[내일을 열며-임항] 제주도, 문제는 환경
입력 2011-11-21 18:46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데 대한 축하열기가 아직 한창이지만 선정 1주일도 채 안 돼서 때아닌 가을폭우가 쏟아졌다. 지난 18일 제주도 서귀포의 하루 강수량은 143㎜로 11월 하루 강수량 기준으로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사실 제주도의 관광 진흥에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르지 않은 날씨다. 특히 관광 성수기에 태풍이 여러 차례 지나가고 큰비가 자주 내려 골프, 낚시, 요트 등 예약된 야외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처럼 하루 강수의 강도가 높아지고, 태풍의 통과와 물난리가 잦아지는 등의 현상이 일과성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제주도는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날 정도의 물난리가 나지 않았다. 화산섬으로 투수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기후변화로 극한 기상현상이 잦아졌다. 그런데도 해발 400∼800m의 중산간지대에 도로와 골프장, 테마파크 등의 개발이 무분별하게 이뤄졌다.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빗물의 흡수를 막으면서 스스로 물길이 되어 버렸다.
이 중산간지대에는 지하수를 많이 머금은 채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화산지형의 독특한 생태공간인 곶자왈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가시딸기, 여름새우란, 큰톱지네고사리, 개가시나무 등 희귀식물을 보듬고 있는 곶자왈 위에, 혹은 곶자왈을 포함한 부지에 많은 골프장이 건설됐다. 제주도는 최근까지도 “곶자왈은 골프코스에서 빼라”는 환경부 요구를 무시한 채 인허가를 내줬다.
제주도가 7대 자연 경관 선정 이후 기대하는 관광특수와 휴양지로서의 명성을 얻으려면 관광산업의 소프트웨어와 인프라도 중요하다. 그러나 환경 보전도 필수적 전제가 된다. 기자는 2005년 늦가을 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둔 제주도의 환경문제를 심층 취재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주도는 십 수년간 끊임없이 환경훼손 논란에 휩싸여 왔다. 골프장과 도로의 과다 건설, 잇따른 항만 매립, 지하수 과다 이용 논란…. 그러는 사이에 제주도의 주민소득은 전국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생물·무생물 자원이 훼손되거나 감소하면 ‘볼 만한’ 곳과 ‘즐길 만한’ 것과 ‘먹을 것’이 희귀해지게 마련이다. 제주도의 대표 요리 가운데 하나인 해물뚝배기에는 전남 완도에서 수입해야 하는 전복 대신 오분작이를 넣은 지 오래다. 서귀포시에서 유명한 해물뚝배기집인 S식당에서 내놓는 뚝배기 안에 든 오분작이도 점점 더 작아진다. 그것이 남획 때문이든 기후변화와 환경훼손 때문이든 결과는 같다. 주민들의 인심도 덩달아 나빠진다. 인심이 팍팍한데 관광객에게 친절하기는 쉽지 않다.
업무상으로도 제주도에 갈 기회가 많아서 줄잡아 20차례 이상 다녀왔다. 환경문제를 지적하다 보니 부정적 측면만 언급했지만, 기자도 제주도는 세계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빼어난 관광자원을 고루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을 먹으러 가서는 만족했던 경우가 많지 않다. 11월 중순 서귀포 해안가 식당가에서는 회 한 접시가 10만원 안팎이었다. 그러나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낡은 아파트단지 앞 상가 식당에서는 고등어 등 제철 생선회 한 접시가 2만원이었다. 현지인과 관광객을 이처럼 철저히 차별하는 경우를 하와이, 나폴리, 파리의 식당에서 상상할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훼손하거나 그것을 지지하는 일부 주민들의 마음은 그럴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으로부터 소외된 제주도는 역사적으로도 핍박과 고난의 땅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심성은 결국 타인에 대한 불친절, 배타심, 바가지요금 등으로 이어진다.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배려가 제주도의 관광산업 도약에도 필수적인 까닭이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