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김명호] 反월가 시위속 월가 사람들
입력 2011-11-20 19:33
지난 주말 뉴욕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났다.
한국계인 그는 회사에서 자신의 투자팀을 이끌고 있다. 최고경영자(CEO)는 아니지만, 그의 연봉은 보통 미국인으로서는 만져보기 힘든 액수다. 그는 아마도 반(反)월가 시위대들이 강력히 비판하는 ‘1%’에 포함돼 있거나, 조만간 그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그에게 주코티 공원에서의 반(反)월가 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즉시 돌아온 대답은 “별로 생각해본 바 없다”는 것이었다.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다른 월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그의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CEO와 그 아래 직원의 연봉이 차이 나는 것은 당연하며, 그만큼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CEO의 종합적인 능력에 따라 회사가 망하기도, 흥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미국 자본주의, 특히 기업 시스템의 핵심으로 봤다.
“미국에서 기업의 사장은 수천만 달러를 받지만, 바로 밑의 직원은 수십만 달러를 받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장, 임원, 부장의 월급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그게 잘못된 것이다.” 한국의 금융회사에서도 일해 본 경험이 있는 그는 “CEO가 연봉을 많이 가져가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실적이 뛰어나 이익을 많이 내면 보통 직원보다 수십배, 수백배 더 받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성과를 내기 위한 CEO 리더십과 능력이 기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했다.
다만 미래의 예상되는 부실을 아랑곳하지 않거나 현재의 부실을 숨기는 등의 방식으로, 한 해 반짝 실적을 내 거액을 챙겨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최소 3년간의 평균 실적을 낸다든지 하는 평가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금융기관이 “너무 성숙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너무 나이브하고, 감성적이고, 냉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대형 금융기관과 붙으면 판판이 깨질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과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그는 결국 직원들의 능력과 창의성을 최대한 뽑아내고, 미래를 예측해 내는 CEO의 리더십이 금융기관의 흥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한국 금융기관이 가장 모자라는 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