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의 꿈 이뤄가는 곽연실 사모 “목사 사모 힘겨웠죠, 돌아보면 연단의 시간 남은 삶 北 살리기에…”

입력 2011-11-16 18:44


2002년부터 10년째 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 50대 목사 사모가 있다.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원을 다니며 쉬엄쉬엄 하는 공부가 아니다. 하루 3∼4시간 밖에 못 자고 해야 할 만큼 치열하다.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사회문화교육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곽연실(57) 사모의 이야기다.

한국순교자기념선교회 총무인 이응삼 목사의 아내이지만 그의 명함에는 ‘한국상담개발원 다문화가정연구소장 곽연실’이라고 적혀 있다. ‘목사 사모’라는 이름 없는 삶을 30년 살았다. 내년부터는 지방의 한 대학 교수가 돼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지난 10일 이대 캠퍼스에서 만난 곽씨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북한의 도시 여성을 연구하는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곽씨는 10년째 이어오는 공부가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한다.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23세 젊은 나이에 신학대학원생과 결혼한 그는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려야 했다. 오로지 목사 사모라는 이유만으로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많았다. 자신을 방어하려 해도 ‘어디 목사 사모가…’라는 식의 비난이 돌아왔다. 두려움과 원망이 담긴 기도가 절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치유상담을 받고서부터다.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상담이었어요. 살아야 하니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모들이 정말 많습니다. 얼마 전 ‘사모 11명 중 10명은 행복하지 않다’는 국민일보 기사는 충격적이지만 사실이라고 보면 돼요.”

곽씨는 치유상담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상담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전문대 졸업생인 그는 4년제 대학을 2년 만에 마칠 수 있는 독학사 과정을 시작했다. 2002년 공부를 시작해 한 번의 실패 없이 국가고시를 통해 영문과 학사학위를 따냈다. 숭실대와 북한대학교대학원에서 각각 사회복지정책과 북한사회문화교육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북한은 곽씨에게 특별한 곳이다. 실향민인 그의 아버지는 고향인 남포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줬다. 가보지 않아도 그곳이 그려질 정도였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깊이 북한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곽씨는 2008년 대학원 입학 전 방문한 평양과 남포를 그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평양땅을 처음 밟는데 마음이 편했어요. 낯설지 않고 각별한 느낌. 아버지 고향인 남포에 갔을 때 내내 식사를 못 할 만큼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실향민의 딸인 그는 북한 사람들을 섬기려는 마음이 강하다. 다음 세대도 그럴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곽씨는 학생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알리고 북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의 남은 삶은 여기에 바쳐질 것이다.

“사모가 병들면 가정이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제가 회복하면서 저희 가정도 살아났어요. 방황하던 아이들도 제 자리를 찾고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죠. 저의 고된 삶은 북한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연단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북한을 살리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것입니다.”

글=문수정 기자, 사진=구윤성 인턴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