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크리스천아카데미 이경원 교장 “나는 현 교육과 싸우고 싶다”
입력 2011-11-16 18:20
백지 한 장 앞을 못 보는 게 사람이다. 달랑 종이 한 장을 바른 방문을 사이에 두고 방 안에서 바깥의 일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람의 앞일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경원(48) 서울국제크리스천아카데미(SICA·Seoul International Christian Academy) 교장이 딱 그 짝이다. 국내 굴지의 의류업체 ‘뱅뱅’ 창업주의 맏며느리이면서 한양대 음대 교수였던 그는 누가 봐도 비즈니스나 음악 관련 일을 할 줄 알았다. 한데 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하게 될 줄이야. 최근 서울 양재동 SICA에서 이 교장을 만났다.
“하나님의 뜻이겠죠. 세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불만을 갖고 나름대로 대안을 찾던 중 우연히 교육 현장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자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빼고 인본주의만 활개 치는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신념이 너무 강했던 게죠.”
이 교장이 학교를 열게 된 계기는 7년여 전. 당시 출석하던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에서 기독교 학교를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아, 이거다’ 하게 됐다. 곧바로 미국 영국 등을 돌며 기독교 교육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모으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남편인 권성윤 DCTY 사장의 격려와 지원은 큰 힘이 됐다.
홈스쿨로 시작해 SICA 설립으로
“1년 이상 열심히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답을 찾았습니다. 신명기 6장 49절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아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기독교적 고전교육입니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오던 방법입니다. 성경에 이미 그렇게 하라고 돼 있고요.”
그 때문에 이 교장의 교육에 대한 관점은 확고하다. 거기다 자녀들을 직접 키우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깨우친 성과물이다. 12년 동안 한양대와 대학원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많은 청년들에게 가졌던 안타까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홈스쿨이다. 기존의 공교육에는 도저히 자녀를 맡길 수 없었다. 의외로 주변에 같은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과 지식, 정보를 나누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교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먼저 DCTY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말로 ‘꿈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홈스쿨 전문 출판사 겸 서점이죠. 현재 남편이 대표를 맡아 2000여 기독교 홈스쿨을 위한 자료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 교육 관련 콘퍼런스를 하면서 교재나 동화책 등을 번역해 출간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지난 8월 마침내 SICA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사립학교를 시작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좋은 콘텐츠의 소프트웨어를 확보했지만 공간과 시설 등 하드웨어가 문제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시부모를 통해 예비하신 곳이 있었다. 지금의 학교 건물이다. 처음엔 못 미더워하던 시아버지 권종렬 뱅뱅 회장이 자신 소유 건물을 리모델링까지 해줬다. 시어머니 허경자 뱅뱅 부회장은 학교 이사장으로 든든한 후원자 역을 맡았다.
교육 속에 하나님이 들어 있어야
이 교장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소탈하고 차분했다. 간편한 복장과 생머리의 수수한 모습에 말투는 침착했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문제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말의 톤이 올라가면서 빨라진다. 그의 입에서 “우리 교육은 모순투성이다” “교육 현장에 교육이 없다” “현 교육과 싸움을 하고 싶다”는 등 다소 격한 말까지 나온다.
“자녀를 학원으로 내모는 잘못된 교육열, 공교육에 의심 없이 맡기는 무철학과 무개념의 부모, 폭력과 반사회성을 묵인하는 무책임한 학교, 지식만을 다루는 파편화된 커리큘럼 등등 참담한 현실입니다. 교회는 또 어떻습니까? 말씀을 가르치기보다 아이들의 흥미와 구미를 더 우선해 지성과 영성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교장이 추구하는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는 마치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성경과 원전(原典)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과서 대신 인문학 책이나 동화책, 소설책 등 살아있는 교재를 사용하는 것이다. 역사, 라틴어와 헬라어, 한문, 수학과 과학, 예체능 등을 삶과 연관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토론을 통해 변증과 설득, 사고를 키우면서 자기주도적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름답고 선하고 완벽하신 하나님을 아이들에게 알리고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교실 안에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임을 체험하며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적 고전교육이 널리 보급되길
이 교장은 어릴 때의 교육을 거듭 강조하며 ‘모판교육’이라는 말을 썼다. 모판에서 모를 잘 길러야 좋은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앞에서 태어나 교회 앞마당을 놀이터 삼아 자란 덕분에 비교적 탄탄한 신앙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교장과 많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나’ 하는 의문이 내내 가슴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질문을 던지자 그는 또 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단호하게 답했다.
“이미 충분히 검증했습니다. 지난 6년여 동안 홈스쿨을 해오면서 이 교육이 대학 입시뿐 아니라 그 이후의 성공까지 담보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학문을 뛰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기도하며 준비해온 교육법입니다. 이들이 훗날 세상에 나와서 개인과 사회를 주도하는 인재가 되도록 하는 게 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니까요.”
이 교장은 2006년부터 운영해온 홈스쿨 오케스트라를 소개했다. 음표 하나 모르던 평범한 아이들이 빠르게 발전해 성남아트센터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무대에 서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고전음악의 어려운 악보를 척척 이해하고 소화한다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오케스트라의 목표이기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SICA는 이제 시작 단계다. 이 교장은 “문을 연 지 3개월도 안 된 지금은 초등학교 저학년만 입학해 있지만 앞으로 중등학생까지 들어오면 온전한 기독교적 고전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법단계(Grammar), 논리단계(Logic), 수사단계(Rhetoric)라는 발달단계를 연령별로 교육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시 자신의 체험과 더불어 하나님 중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는 어릴 때 성령체험을 해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실생활에서는 늘상 혼란과 괴리감을 느꼈어요. 교육이 그 문제를 해결해줘야 합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아이들이 분명하게 성경적인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인근 100여평 부지에 4층 건물인 학교는 안팎으로 깨끗하게 잘 정돈돼 있다. 건물 벽면에는 학교 이름과 함께 ‘갈릴리교회’라는 글씨도 붙어 있다. 안정진 교목의 인도로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학생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신앙공동체이기도 한 것이다. 이 교장은 “아직은 생소한 기독교적 고전교육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보급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글 정수익 선임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