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조용래] FTA 괴담의 진실부터 헤아려야

입력 2011-11-16 17:38


요 몇 주일 마음이 편치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찬반 논쟁을 지켜보면서 자괴감을 많이 느낀 탓이다. 기자 노릇을 시작하기 전 학부, 석·박사 과정과 연구생활을 포함해 20년 가까이 경제학 분야 한 우물을 팠었는데 그 어느 쪽 주장과 논리에도 쉽게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찬성론의 장밋빛 전망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협정이 발효되면 고용이 얼마 늘고, 성장률은 매년 몇 % 포인트씩 커진다지만 따져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수치 전망에서 흔히 이용되는 동태적 경제전망모델(CGV모델)은 수많은 변수들의 변화를 가정을 통해 전제하고 이런 과정을 무수히 거치면서 최종 전망치를 도출하는 것이다. 가정이 조금만 삐끗해도 결론에 적잖은 차이가 날 것은 불문가지다.

경제학은 전망보다 불확실한 현실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자본주의 4.0’의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가,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난 30여년 신자유주의와 궤를 같이 해오면서 모든 경제현상을 합리·효율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수리경제학의 오만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 것은 대단한 탁견이다.

찬성하는 쪽에서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만큼 FTA는 당연한 것’이라는 주장도 맥이 빠진다. 정말로 우리 경제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해외·내수부문의 극단적인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앞세운 다음에 개방 확대론을 주장해야 마땅할 터인데, 아픈 현실에 재를 뿌리면서까지 당위론을 펴는 모습은 가위 코미디다.

반대 측 논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금방이라도 나라가 망할 듯 요란하다. 여기에 편승한 것이 이른바 FTA 괴담이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다’ ‘공적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다’ 등 밑도 끝도 없는 얘기부터 ‘한·미 FTA를 하자는 것은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과 같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당초 한·미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신년연설에서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시작됐다. 자신의 반미·반시장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꿀 수 있는 카드였을 터다. 그런데 그는 FTA를 장밋빛으로 보지 않았다. 손해 보는 쪽과 이익을 보는 쪽이 있기 마련이며, 경쟁력이 약한 부문은 작은 물고기들만 사는 연못에 덩치 큰 메기가 들어오면 자연히 경쟁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FTA 메기론’을 폈다. 일방적인 이익도 완전한 손실도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전제는 불확실성이다. 한·미 FTA에서 최대 쟁점으로 제기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 때문에 판 전체를 없던 것으로 되돌리겠다는 주장은 비약이다. 강 건너 저편에 펼쳐질 사태가 불안해서 이편에만 머물러 있겠다는 태도는 지금까지 무수한 문제를 끌어안고서라도 나름대로 진화해온 한국사회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던 참에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새 국면을 맞았다. 15일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비준안 선(先)통과를 전제로 석 달 내 미국과 ISD 재협상을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정부도 “비준안 통과 후 어떤 이슈든 한국과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앞으로 ISD 재협상이 어떤 내용을 담아낼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적어도 작금의 논란을 완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여 당초 한·미 FTA가 논란의 도마에 오르게 된 까닭, FTA 반대론자들의 문제 제기가 국민들에게 파고들 수 있었던 배경이 달라진 것은 전혀 아니다.

FTA 괴담의 진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경제지표는 좋아졌다지만 높은 청년실업률을 비롯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암담할 뿐, 여기에 나를 따르라 식으로만 밀어붙이는 이 대통령의 소통 없는 리더십에 대한 불안·불만·불신까지 겹치면서 사람들은 가볍게 반대론에 편승하고 있음이다. 이것이 한·미 FTA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조용래 카피리더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