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노석철] 한·미 FTA와 손학규

입력 2011-11-16 22:06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항 가운데 논란이 되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우리나라에 약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 정말 모르겠다. 반대쪽 주장을 들으면 이 조항 때문에 나라가 거덜날 것 같고, 찬성하는 이들은 별거 아니라고 하니 안심이 된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해 한쪽 편을 들고 싶어도 사실 자신이 없어 편을 못 든다. 양쪽이 귀를 닫고 서로 죽기살기로 덤비는 싸움판에 끼어들었다가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러면서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우리 정치인들은 정확하게 알고 저러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가만히 뜯어보면 그들도 진짜 모를 수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 보여 위안을 받는다. 어떤 여당 정치인은 정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국익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며 SNS에 글을 올리기도 한다. 거기에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은 없다. 일부 야권 인사들은 진보진영의 전문가라는 분들의 글을 그대로 퍼 나르며 “이래도 비준해줘야 되느냐”고 목청을 높인다.

과거와 현재의 말이 다른 정치인들도 수두룩하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야당 시절인 2007년 5월 ISD를 놓고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한·미 FTA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거 여당 시절 한·미 FTA에 찬성했던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그때는 잘 몰랐다”면서 강경 반대파로 돌아섰다. “미국 월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야권의 ‘ISD 폐기’ 투쟁을 이끄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더욱 딱하다. 그는 경기도지사 퇴임 후 2007년 1월 사실상 한나라당 대권후보 도전을 선언했다. 당시 이른바 ‘광개토전략’을 공개하며 한·미 FTA 지지자임을 역설했다. 한·미 FTA의 조속한 체결 및 한·일, 한·중 FTA 체결, 매출 100조원의 글로벌 기업 10개 육성, 글로벌 인재 10만명 양성이 그가 제시한 광개토전략의 3가지 목표였다.

그는 같은 달 동아시아미래재단 신년 인사회에선 이런 말도 했다. “우리 디지털 주몽들이 세계를 누비며 팔 세계 1등 상품을 많이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글로벌 경제협력입니다. 한·미 FTA를 확고한 의지를 갖고 조속한 시일 내에 체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디지털지식산업과 글로벌서비스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적 영토확장, 그것이 바로 광개토전략의 핵심….”

그는 그 후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버티고 있는 한나라당 대권 경선을 포기하고 탈당해 민주당 대권 후보에 도전했다가 정동영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시절인 2008년 1월에도 “그간 일관되게 한·미 FTA에 지지 입장을 표명해왔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ISD 폐기’ 투쟁을 이끌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때나 지금이나 ISD 조항은 그대로라는데 그의 입장은 180도 달라졌다. 그렇다면 과거엔 ‘독소조항’이 있는지 검토도 해보지 않고 한·미 FTA를 찬성했다는 얘기인가.

그의 좌우명은 수처작주(隨處作主·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라고 한다. 혹시 과거엔 한나라당 대권주자로서 한·미 FTA를 찬성했고, 이제는 야권대통합의 리더를 염두에 두고 반대파로 돌아선 건 아닌가 하는 억측까지 든다. 정말 몰라서 말을 바꿨다면 이해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소신이 달라졌다면 대권을 노리는 큰 그릇과 거리가 멀다. 이명박 대통령이 ‘ISD 재협상’ 카드를 던졌으니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그의 진짜 속마음이 뭔지 듣고 싶다.

노석철 산업부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