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성추문… 베를루스코니, 51차례 신임투표 통해 살아남았지만 결국 쓰러진 ‘스캔들의 제왕’
입력 2011-11-09 21:15
8일(현지시간) 사퇴 의사를 밝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스캔들의 제왕’이라 할 만큼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18년간 이탈리아 정계를 좌지우지했지만 각종 비리와 성추문, 엽기적 행동으로 얼룩진 정치인생이었다.
미디어재벌 출신인 베를루스코니는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명성과 화려한 언변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994년 처음 총리에 선출된 그는 뇌물 스캔들과 북부연맹의 연정 탈퇴로 7개월 만에 물러났다. 2001년 총선 승리로 다시 총리직을 맡아 5년간 집권한 후 2006년 선거에서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에게 패했다. 하지만 중도좌파 연정의 내부 균열과 경제개혁 실패로 프로디 내각이 붕괴하자 2008년 세 번째로 총리에 선출됐다.
그는 정치생명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살아남는 ‘정치 맷집’을 보여줬다. 총리 선출 이후 수차례 부패와 탈세 혐의로 기소됐지만 그때마다 신임투표를 통과했다. 2008년 총리 복귀 이후에만 51차례 신임투표를 통과했다.
성추문도 끊이지 않았다. ‘루비게이트’로 불리는 모로코 출신 미성년 클럽댄서 성매매 사건, 로마 저택에 매춘부를 불러들여 섹스파티를 벌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외국 정상들에게도 막말을 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가리켜 ‘선탠한 남자’ 운운해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켰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뚱보’라고 부른 통화내역이 공개돼 구설에 올랐다.
한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베를루스코니의 사임 결정에 유럽중앙은행(ECB)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ECB는 그동안 이탈리아 국채를 꾸준히 매입하며 소방수 역할을 해 왔지만 시장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 3일 “ECB는 유로존의 최후 보루가 아니다”면서 “국채 매입은 한시적인 것일 뿐”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드라기 총재가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FT는 전했다. 두 사람의 악연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5월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시절 “지난 10년간 이탈리아의 발전이 더딘 이유는 정치 때문”이라며 베를루스코니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