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영석] 똥주 선생
입력 2011-11-09 17:49
“제발 “제발 똥주 좀 죽여 주세요. 아멘.” 최근 극장가를 장악한 영화 ‘완득이’의 원작 첫 구절이다. 고등학생 완득이가 교회에서 담탱이(담임선생님) ‘똥주(이동주) 선생’을 죽여 달라고 하는 기도다.
현실적 관점에서 똥주 선생은 ‘문제 교사’다. 사회 선생인 똥주의 수업은 욕으로 시작해서 막말로 끝난다. 1등에겐 “넌 꼭 서울대 가라. 걔네들이 머리는 똑똑한데 싸가지는 좀 없거든”이라고 쏘아붙인다. 체벌 장면을 촬영하는 학생에겐 “오늘은 학생 팼다는 글 올라가겠다. 신고정신 하나는 투철한 니들이니까”라며 겁박한다.
완득이에겐 더욱 가혹하다. 옥탑방 앞집에 살면서 완득이가 학교에서 지급받은 즉석밥까지 뺏어먹는다. 말보단 주먹을 앞세우고, 술까지 권한다. 하루 종일 간섭이다. 완득이가 똥주 선생의 죽음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릴 만도 하다.
그러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로 유치장을 다녀온 그에게 학생들이 보낸 것은 재회의 기쁨을 담은 환호성이었다. 완득이와 베트남 출신 엄마의 만남을 주선한 이도, 완득이의 난쟁이 아버지를 위해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이도 똥주 선생이었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완득이를 위해 즉석밥을 챙겨준 이도, 킥복서라는 꿈을 갖게 한 이도 그였다.
또 한 명의 영화 속 선생님이 있다. 전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영화 ‘도가니’ 속 미술교사 강인호다. 학교발전기금 5000만원까지 내며 어렵게 선생님이 된 그였지만 장애아들의 아픈 소리를 외부에 알렸다. 영화 ‘완득이’는 누적 관객 수 250만명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에 돌입했고, ‘도가니’는 500만명에게 광주 인화학교의 현실을 보여줬다. 참스승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만들어낸 흥행 대박이다.
그럼 현실 속에서 똥주 선생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똥주 선생이 실제 학교에서 학생들을 야단치게 되면 학부모의 자해 난동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11월1일, 광주). 똥주 선생의 긴 머리카락은 학생의 손에 쥐어뜯길 수도 있고(10월19일, 광주), 온 몸은 학생의 주먹에 희생당할 수도 있다(11월 1일, 대구).
이처럼 학생들의 교권 침해는 이제 거의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그런 탓에 선생님의 입에서 학교 가기 무섭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생님 10명 중 7명 이상은 ‘학생이 지도에 불응하는 경우가 많아서’라는 이유로 아예 학생들을 방치한다.
반대로 지난해 경기도를 시작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전교조의 지난달 설문조사 결과 학생 10명 중 6명은 선생님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수업시간에 잘 권리가 있다고 했다. 외형적으로는 교권과 학생인권의 간격이 커져 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이 있어 보인다.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선생님 10명 중 8명 이상이 “학생인권조례에도 불구하고 학생 지도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수많은 똥주 선생들이 여전히 학교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의 설문조사에선 학생 10명 중 8명이 ‘선생님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착한 완득이도 그곳에 있다. 그러기에 이젠 교권과 학생인권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오늘 아침 69만여명의 수험생이 고통의 3년 레이스를 마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도전한다. 이제 잠시 한숨 돌릴 여유를 가져보자.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똥주 선생을 만나러 가자. 3년 동안 묵묵히 뒷바라지해 온 전국의 수많은 똥주 선생들을 말이다.
김영석 사회부 차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