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내전은 클린턴의 승리”… 워싱턴포스트 ‘역할’ 조명

입력 2011-10-31 18:07

31일(현지시간) 시한이 만료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리비아 군사작전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리비아 군사작전의 성공은 클린턴 장관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실용적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리비아 내전이 ‘힐러리 클린턴의 전쟁’이었다고 평가했다.

◇나토의 분열을 해결한 카리스마=나토의 리비아 공습은 처음부터 불안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독일은 군사 개입을 거부했고 이탈리아와 터키는 공습을 주도한 프랑스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 지난 3월 19일 나토군의 리비아 공습 3시간 전 프랑스 라팔 전투기 편대가 먼저 출격했을 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프랑스가 나토의 공을 가로채려 한다며 격분했고 전투기 이착륙에 필요한 기지를 제공하지 않았다. 한 서방 외교관에 따르면 당시는 “연합군이 깨질 위기상황”이었다.

이 때 소방수 역할을 자처한 이가 클린턴 장관이었다. 그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장시간 통화를 하며 그를 설득했다. 또 클린턴은 프랑스·영국·터키 외무장관들과 4자 콘퍼런스 콜(전화 회의)을 통해 군사작전에 대한 세부 사항을 결정함으로써 나토의 분열을 막았다.

◇아랍 외교의 중요성으로 오바마 설득=미 행정부 내에서도 그의 뚝심과 실용적 리더십은 빛났다. 지난 2월 카다피군이 무자비하게 시위를 진압할 때만 해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는 미국의 군사개입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했다. 이슬람 국가에 섣불리 군사개입하는 것은 정치적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클린턴 장관도 처음에는 반대했다. 하지만 3월 12일 아랍연맹(AL)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유엔에 공식 요청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클린턴 장관은 다음 날 파리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회담에서 페르시아만 국가 대표들과 잇따라 만나며 인도적 지원이 아닌 군사개입을 재촉했다.

클린턴은 3월 15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아랍국들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미국에 이로우며 ‘아랍의 봄’에도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틀 뒤 유엔 안보리는 마침내 결의안 1973호를 채택하며 리비아 내전에 대한 군사개입을 시작했다.

지난 7월 시민군의 자금이 고갈돼 내전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동결된 카다피의 계좌를 해제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또한 7월 15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리비아연락그룹 회의 때도 참가국들에 동결 자산을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