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대타결 진통] 민주 “야권통합 걸림돌 될라”… 다시 강경 선회
입력 2011-10-31 22:47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최고위원들 반대→의원총회 부결→여야 합의 파기.
지난 5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과 비슷한 일이 31일 민주당에서 다섯 달 만에 재연됐다. 합의문 제목과 합의문 서명 주인공만 ‘한·EU FTA’에서 ‘한·미 FTA’로, 박지원 전 원내대표에서 김진표 원내대표로 바뀌었을 뿐이다. 야권통합이라는 과제 앞에서 진보 진영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민주당의 한계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굴욕적 협상”, 여야 합의 파기=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성토장으로 변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전날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의 최대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문제를 합의한 김 원내대표를 격한 용어로 비난했다. 김 원내대표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냐”고 항의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인영 최고위원, 이미경·정범구 의원 등도 김 원내대표가 가져온 합의안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놨다. 최고위는 예정 시간을 30분이나 넘겨 끝났다.
곧이어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절대다수가 합의안을 반대했다. 오전 10시30분부터 5시간 동안 열린 의총에서 강경파는 물론 다수 의원들이 ‘굴욕적 협상’이라며 김 원내대표의 합의안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합의안은 부결됐고 민주당 의총 직후 열릴 예정이던 야5당 합동 의원총회도 잠정 연기됐다.
여야 원내대표 간 당초 합의안 대신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ISD 유지 여부에 관한 즉각적인 재협상 약속을 받아오라고 한나라당에 요구했다. 당초 합의안을 사실상 백지화시킨 것으로, 원내대표 간 협상 이전의 원래 입장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반복되는 합의 파기, 왜=이날 상황은 4·27 재·보궐 선거 직후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때와 유사하다. 당시 민주당 앞에 놓인 최대 과제는 야권통합이었다. 10·26 재보선 이후 야권통합은 그때보다 훨씬 중요한 이슈가 됐다. 민주당의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이유다.
김 원내대표는 실리를 챙기자는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 측은 “여당이 본회의에서 강행처리할 위험성이 있는데, 그냥 당하느니 얻어낼 건 얻어내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통합 주도권 싸움에서 ‘혁신과통합’ 등 시민사회 세력에 주도권을 뺏기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FTA 통과 거수기’ 역할을 맡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칫하면 통합 주도권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손학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이해할 수 없다”며 “지금 마련된 여·야·정 협의 내용을 검토해 내년 4월 총선에서 FTA 문제를 내걸고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사실상 처리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