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연 기자의 건강세상 돋보기] 복지부의 황당한 정책집행
입력 2011-10-31 17:25
지난달 21일 CT(컴퓨터단층영상진단), MRI(자기공명영상진단), PET(양전자단층촬영) 등 영상장비 수가인하소송과 관련된 1심 판결이 나왔다. 1심은 병원계의 승리로 결론지어졌다. 법원은 서울아산병원 등 45개 병원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영상장비 건강보험수가 인하고시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복지부는 지난 4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영상검사장비의 검사건수 증가 등 원가변동을 이유로 CT, MRI, PET에 대해 각각 14.7%, 29.7%, 16.2%씩 내리는 내용의 영상장비수가 인하방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병원계가 수가인하 결정과정에서 절차와 내용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1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법원은 진료비용의 현저한 변화 등 상대가치점수를 직권조정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전문가의 평가를 거치지 않은 채 급여행위조정에 대해 직권조정을 했다며 수가인하고시가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 병원들이 제기한 효력정지신청도 받아들여 이 고시는 항소심 선고 시까지 효력이 정지됐다. 결국 영상장비수가가 이전 수준으로 환원, 국민 부담이 다시 증가하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치료재료의 수가조정과정에서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의 평가는 의무사항이 아니며 2001년 이후 위원회를 거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내용을 규정한 ‘행위·치료재료 등의 결정 및 조정기준(제10조)’을 보면 ‘행위전문평가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결정 또는 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복지부가 이를 재량행위로 해석, 그동안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승소판결의 이유가 참 어이없다. 법원은 복잡한 법리를 들어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단순한 절차상의 하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수가인하의 타당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합리적이고 순수한 목적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해도 그 과정과 절차가 합리적이고 투명하지 않으면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일처리의 기본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국가의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복지부가. 결국 절차를 무시한 안이하고 편의적인 행정으로 국민건강보험은 한해 1000억원 이상, 국민들은 600억원 정도를 더 부담하게 됐다.
뿐만 아니다. 복지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시한 자동화검사 수가조정, 병리과검사 수가조정, 자연분만 수가인상 등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단지 의약품 관리료의 약국수가 인하에 대해서만 약사 사회 일부에서 이의를 제기했을 뿐 복지부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소송결과에 따라 당장 약국수가 인하는 물론 다른 정책 집행에서도 제동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로 인해 국민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과 이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조창연 기자 chyjo@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