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팀의 감격 반란… 과학야구 승리였다
입력 2011-10-28 23:51
머니볼/마이클 루이스/비즈니스맵
그는 2004년 금융 월간 ‘스마트머니’가 뽑은 미국 경제 파워 엘리트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같은 재계 거물과 나란히. 일개 야구단 단장이 말이다. 2009년 종목 불문 최고의 단장 10명(‘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꼽혔고, 2007년에는 최고의 메이저리그 단장(‘포브스’)이 됐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이다.
한때 빌리 빈은 모든 스카우터가 꿈꾼 야구 천재였다. 193㎝ 장신에 날렵한 몸, 스피드와 파워까지. 그에게는 모자란 게 없는 듯했다. 하지만 ‘한 경기 3루타 3개’를 정점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그의 경력은 프로 진출 6년 만에 ‘2할1푼9리, 29타점, 3홈런’으로 초라하게 마무리된다.
빌리 빈 인생의 만루홈런은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터졌다. 불명예 은퇴 뒤 전력분석원을 거쳐 오클랜드의 단장이 된 그는 “내가 선수일 땐 안 그랬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과거를 버렸고 새 방식을 찾아냈다. ‘머니볼’은 ‘루저’ 빌리 빈의 인생 2막 성공담이자, ‘머리’로 ‘자본’을 이긴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의 메이저리그 쿠데타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밀은 ‘남들이 품지 않는 의문’과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이 두 가지에 있었다.
‘돈=승리’ 공식을 깨다
돈이 승자를 만든다는 것. 그게 비유만은 아니다. 프로 야구의 세계에서 높은 연봉은 좋은 선수를 뜻한다. 잘 던지고 잘 때리고 잘 잡는 싱싱한 팔다리. 따라서 돈은 곧 승리였다.
2002년 뉴욕 양키스는 팀의 총 연봉으로 1억2600만 달러(약 1400억원)를 쏟아 부었다. 29개 구단 중 연봉 1위. 그해 오클랜드 예산은 3분에 1에도 못 미치는 4000만 달러. 끝에서 두 번째였다.
경기 결과는 뜻밖이었다. 그해 오클랜드는 1위를 거머쥐었고, 오클랜드에 밀려 2위를 차지한 건 연봉 1위 ‘메이저리그의 큰손’ 양키스였다. 그건 마치 몸무게 40㎏짜리 라이트플라이급이 120㎏ 슈퍼헤비급을 때려눕힌 것과 같았다. 혹은 동네 초등학생이 마이크 타이슨을 상대로 KO승을 거뒀거나. 게다가 승리의 주역은 그해 드래프트(신인선발)에서 어느 구단도 원하지 않던, 뚱뚱하고 왜소하고 발도 느린 이류들이었다. 비주류 외인부대가 스타 플레이어들을 제치고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오클랜드의 선전은 2002년 한해의 ‘일탈’도 아니었다. 1997년 빌리 빈 단장이 취임한 뒤 팀은 2000∼2003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정규리그가 끝난 뒤 최종 우승팀을 가리기 위한 경기) 진출에 성공했다. 2002년에는 20연승이라는 대기록도 달성했다.
야구계만 모른 야구의 비밀
제레미 브라운, 스티븐 스탠리, 존 베이커….
2002년 시즌을 위한 드래프트를 앞둔 시점. 빌리 빈 단장이 칠판에 이름을 적은 뒤 말했다. “컴퓨터와 통계가 보증하는 선수들입니다.” 씹는 담배를 질겅대던 스카우터들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지나갔다. 죄다 처음 보는 이름들. 지난 1년간 동료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한 번도 입에 오른 적 없는 선수. 그런 무명을 누가 신경 쓴단 말인가.
스카우트들은 1년 중 3분의 1을 떠돌며 보낸다. 수십만㎞를 달려 찾아간 허름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어느 촌구석 야구장에서 싸구려 햄버거를 우적대다가 첫눈에 반하는 괴물 투수를 발견하는 것. 그게 메이저리그 일류 스카우트의 방식이었다.
스카우트에게 필요한 건 ‘감’. 기록은 무의미했다. 제레미 브라운은 ‘미 남동부 대학리그에서 유일하게 300개의 안타, 200개의 볼넷’을 기록한 선수가 아니라 ‘거대한 엉덩이를 가진 뚱뚱한 포수’일 뿐이었다. 그게 그의 첫인상이었으니까. 스카우터트은 출루율 장타율 같은 기록 대신 체격을, 볼넷을 골라내는 감각보다 빠른 발을 중시했다.
통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건 야구장 밖의 팬들이었다. 어떤 이는 타율과 볼넷까지 포함한 ‘득점 생산력’ 공식을 만들었다. 다른 팬은 특정 선수가 지명타자일 때와 1루수일 때 타율 차이를 계산해 구단에 보내기도 했다.
빌리 빈이 발견한 건 야구계 밖의 이런 흐름. 관행과 아집에 싸인 야구 관계자는 몰랐던 과학야구, 통계야구라는 신천지였다. 스카우트의 감 대신 기록을 토대로 ‘싸고 품질 좋은’ 선수를 발굴한 2002년 오클랜드의 드래프트는 그해 1위의 성공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의 드래프트는 빌어먹을 도박이었다. 50명 뽑아서 2명 성공하면 기뻐했다. 대체 어떤 사업에서 50분의 2를 성공이라 부르나?” 빌리 빈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답은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다. 김찬별, 노은아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