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와 함께 ‘완타치’ 공연 김장훈… “무대는 나에게 안식처이자 도피처”

입력 2011-10-27 18:04


1996년 여름, 서울 동숭동 마당세실극장에서는 한 가수의 콘서트가 열렸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언더그라운드 가수 김장훈의 공연이었다. 당시 그는 공연 도중 방송활동을 시작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어진 노래는 오지 오스본의 ‘굿바이 투 로맨스(Goodbye To Romance)’. 김장훈은 펑펑 울었다.

당시만 해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방송에 나가면 ‘변절했다’고 욕을 먹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가난했고, 김장훈 개인적으로도 방송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설 무대가 없었다.

그해 9월, 김장훈은 ‘노래만 불렀지’가 실린 3집을 발표했다. 언론과의 인터뷰가 이어졌는데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세상과 타협한 건가요?” 자신의 처지를 몰라주는 야멸친 질문 공세에 그는 같은 답변을 반복해야 했다. “우리 엄마는 8만원 월세방에 산다. 밥은 교회 성미쌀 얻어다 해 드신다. 누나는 노점을 한다. 이게 내 근간이다. 세상과 타협한 게 뭐가 문제냐. 맘대로 쓰시라.”

그로부터 15년이 흘렀고, 그는 유명 가수가 됐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김장훈은 ‘기부천사’ ‘독도지킴이’로 더 유명하다. 가수보단 선행에 앞장서는 시민운동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63빌딩. 김장훈은 독도 문제와 관련,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특별한 환경에 살다 보니 안 해도 될 일을 계속 하게 되네요. 제가 이런 걸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민망하지만 해야 되니까 하는 거예요. 음악만 했으면 좋겠어요.”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건 단연 음악과 무대라는 걸 짐작케 했다. 그의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느끼게 된다. 15년 전 ‘낭만이여 안녕(Goodbye To Romance)’이라고 노래하며 눈물짓던 김장훈의 순정을. 이는 그의 콘서트가 수년째 공연 분야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이유일 거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김장훈을 만났다. 공황장애가 재발해 병원에 입원하기 엿새 전이었다. 공황장애 같은 마음의 병으로 투병하는 게 일견 자연스럽게 여겨질 만큼 그가 무대에 갖는 애착은 상상을 초월했고, 세상에 대한 울분은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것들이었다.

-김장훈에게 무대는 어떤 존재인가.

“도피처이자 안식처다. 내 삶은 두 개다. 무대의 삶과 무대 밖의 삶. 그런데 나는 무대 밖 삶에 적응 못하는 인간이다. 대신 무대에서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산다. 무대가 내 무덤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무대 밖 삶에 적응 못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예를 들자면 신문 사회면을 못 본다. 너무 분노가 치밀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도 그래서 못 봤다. 예전엔 이런 나를 보며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무대에 미쳐서 세상에 적응 못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반대로 생각하게 되더라. 내가 세상의 부적응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무대에 서게 되는 거라고.”

-일부 팬들은 김장훈이 기부나 독도 문제에 집중하느라 음악엔 소홀하다고 여긴다.

“멀리 가진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다. 골수팬 중에도 저보고 ‘변했다’고 말씀하는 분이 있다. 노래하는 사람에게 ‘기부천사’ ‘독도지킴이’ 같은 이미지는 콤플렉스다. 이런 모습이 내 음악을 희석시켜 버린다.”

이날 김장훈을 만난 건 다음 달부터 열릴 ‘완타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완타치’는 김장훈이 ‘공연 맞수’라고 할 수 있는 후배 싸이와 2009년부터 매년 열어온 합동 콘서트다.

두 사람은 그동안 전국 25개 도시에서 공연을 열었는데 전부 매진됐다. ‘완타치’가 동원한 관객은 무려 30여만명. 올해는 ‘완타치 2011-형제의 난’이라는 타이틀로 다음 달 19일 인천을 시작으로 원주 대구 광주 서울 부산 등 6개 도시에서 12월 31일까지 공연한다.

-‘완타치’는 현재 명실상부한 최고 인기 공연이다. 비결이 뭔가.

“관객은 냉정하다. 이들은 나와 싸이가 공연에 있어서 만큼은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걸 안다. 첫해엔 무대에 서면 관객들이 ‘김장훈’ ‘싸이’를 외쳤는데, 지난해엔 ‘완타치’라고 외치더라. 무대에서 이 단어가 ‘판타지’처럼 들렸다. 둘이서 ‘이 공연도 이제 자리를 잡았구나’라고 얘길 했다.”

-두 사람 모두 공연에 대한 자부심이 보통이 아닌 걸로 안다. 충돌할 땐 없나.

“첫해(2009년)엔 많이 싸웠다. 욕도 하고 싸이는 울고…. 싸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이지 않나. 그런데 난 공연할 땐 엄격하다. 체조경기장 같은 곳에서 하면 스태프만 700명이다. 스케줄대로 진행돼야 하는데, 싸이가 일정 못 맞추면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해쯤 되니까 둘의 성격이 섞이게 되더라. 나는 오히려 느슨해지고 싸이는 그런 나를 질책하고.”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가.

“극단적인 콤플렉스와 왕자병을 모두 갖고 있다. 무대 오르기 전엔 ‘난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생각만 한다. 그러다 무대에 오르면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데 무대 내려오면 다시 자책감에 빠진다. 10년 넘게 공연 끝난 날 잠을 잔 적이 없다. 무대에서 오늘 했던 걸 밤새 복기한다. 올해까지 14년째 12월 31일 공연을 부산에서 여는데, 매년 이날 밤은 호텔방에서 혼자 아침까지 새해 계획을 짠다. 그해 공연 일정의 70%가 1월 1일 부산 호텔방에서 나오는 셈이다.”

기부와 독도 질문을 빠뜨릴 순 없었다. 빚을 내 기부하는 김장훈의 기부 행보는 기행에 가깝다. 누적 기부액이 1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를 기부했는지 모른다.

-왜 기부를 하나.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내 DNA가 그렇게 생긴 것 같다. ‘기부해야지’ 마음먹고 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김장훈은 언젠가부터 천사가 돼버렸다. 이런 이미지가 부담스럽진 않나.

“내 단면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정말 송구스럽다. 분명한 건 내 인격은 평균 이하라는 거다. 이건 겸손의 말이 아니다. 성격상 내가 남들보다 나은 건 딱 두 개밖에 없다. 첫째, 공연이나 음악에 치열한 성격을 갖췄다는 것. 둘째, 물질적인 것에 치사하지 않다는 것.”

-어쩌면 대중들이 가장 궁금한 건 김장훈의 재산일 것 같다.

“연금보험 들어놓은 게 있다. 나도 나이 들면 애들 과자값이라도 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지난여름 우울증이 생겨서 일을 하나도 못해 빚을 좀 지게 됐다. 현재로서는 보험금을 포함해도 마이너스다. 집은 다들 아시다시피 월세이고. 그런데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부자 같은지 모르겠다.”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뭔가.

“성격 자체가 누가 누굴 힘으로 누르는 걸 못 본다. 방송국에서도 예전에 PD랑 종종 싸우곤 했다. 돈이나 권력을 앞세워 유세 떠는 걸 못 참는다. 지금은 아니지만 힘 있다고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 있으면 나 역시 반말로 응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외교력 경제력 군사력 같은 힘 앞세워서 지도 바꾸고 역사 고쳐버리는 걸 못 참겠다.”

-정치를 하면 생각하는 걸 현실로 바꾸는 게 좀 더 수월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에 관심은 없나.

“없다.”

“저 검소하지 않아요”… 자신을 깎아내리는 사람

인터뷰를 마치고

김장훈은 자신이 미화되는 걸 극도로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겸손이 아니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일부러 자신을 깎아내린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연예인이 있을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카페에서 나오는 길. 그는 발목이 드러난 칠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다리를 잠깐 들어 보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런 바지 입는 사람이 정치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입은 재킷, 이거 진짜 명품이거든요. 저 하나도 안 검소해요.”

그리고 독도의 날인 지난 25일, 서울 역삼동 ‘비주얼아트센터보다’에서 김장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사진전, 영상전 등이 준비된 ‘독도 페스티벌’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병원에서 잠시 외출해 기자회견을 연 김장훈은 병세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특유의 너스레로 응대했다(김장훈은 앞으로 2주 정도 더 병원에서 지낸 뒤 퇴원할 예정이다).

“전 쓰러졌다 일어나면 노래할 때 노래의 느낌이 더 좋아지더라고요. 다음 주에 병실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를 발표할 거예요. 제목은 (최근 발표한 신곡 ‘이별 참 나답다’를 패러디한) ‘입원 참 나답다’인데,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