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자살은 타살이다
입력 2011-10-26 18:05
리비아 카다피 사망과 서울시장 보궐선거 관련 기사 폭주로 스쳐지나간 뉴스가 하나 있다.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동반자살을 계획한 20∼40대 남녀 6명이 자신만 따돌리고 자살여행을 떠났다며 경찰에 신고한 20대 남성 덕분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얘기다. 경기도 수원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신고자는 동반자살 여행을 떠난 일행이 렌터카에 탈 자리가 없으니 자기 혼자 빠지라고 한 데 불만을 품고 경찰에 연락을 취했다. 경찰의 과학 수사와 신속한 조치로 ‘6명 동반자살’이라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서글프기 짝이 없는 뉴스다.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의 동반자살이 빈번해졌다. 이런 유형의 자살은 사이버 공간이 활성화된 2000년대 들어 새로 나타난 현상이다. 처음에는 자살 방식의 희소성 때문에 크게 보도됐지만 언젠가부터 서너 명이 함께 목숨을 끊어도 신문에 실리지조차 않을 만큼 잦아졌다. 동반자살이 늘어나서일까. 우리나라 자살 통계를 살펴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는 1만5566명으로, 하루 평균 42.6명꼴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인 자살률은 31.2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20년 전에 비해 5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OECD 국가 자살률 평균의 2.5배임을 감안하면 부끄럽게도 전 세계 1위 아닐까 싶다. 열 몇 번째 경제대국임을 자랑하며 곧 선진국에 진입할 것이라 공언하기가 민망하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범국가 차원에서 자살을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대책은 자살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인식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도 자살을 심리적 고통 때문에 발생하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면서 그것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제 자살이 사회적 병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무려 110여년 전에 이런 주장을 했는데도 아직 그 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뒤르켐은 1897년 발표한 ‘자살론’에서 “자살은 엄연히 사회적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또한 사회적이다”라고 설파했다. 그는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개인의 체질이나 유전적 요소, 정신병, 신경쇠약증 같은 질환이 자살과 확정적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보다는 사회적 통합이 이완될 때 자살이 늘어난다는 게 뒤르켐 주장의 요체이자 결론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특별히 높고, 또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회적 통합 이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1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란 점에 주목해 보자. 학업 및 입시, 취업, 결혼 등 무한 경쟁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낙오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병리가 이들의 자살을 부추기기 때문이라 하겠다. 경쟁에선 탈락자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탈락자에 대한 사회 경제적 지원책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자살률이 80대 이상 초고령 노인층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사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노인 자살은 가족 중심적 연고주의와 경로사상 등 전통적 사고방식의 해체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부모 부양을 꺼리는 사회풍조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노인들에 대한 사회 정책적 지원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게 문제다.
결국 우리 사회가 청년층과 노년층을 따뜻하게 보듬지 않는 한 자살률을 떨어뜨리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한강 다리에 ‘생명의 전화’를 설치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자살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TV드라마에 대해 징계를 내리는 것 등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봉책일 뿐이다.
정부, 그리고 국민이 ‘자살=사회적 타살’임을 인정한다면 자살을 초래하는 사회 경제적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