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약국

입력 2011-10-24 13:11

믿는 대로 사는 삶



지난달 모로코에 갔다가 자비량 평신도 선교사를 만났다. 다니던 교회는 있지만 교회로부터는 일절의 지원을 사양하고 무역을 하면서 이슬람권에서 9년을 살았단다. 왜 교회에 소속을 두고 지원을 받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실적주의’에 매이고 싶지 않아서고, 자기가 믿고 해석하는 하나님과 예수를 간섭받기 싫어서라고 했다.

이를테면, 그가 보기에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인간 개개인의 영혼이 진보하여 예수를 닮도록 신앙을 가르치고 보여주지 않는 것 같단다. 그저 성과주의의 거미줄에 걸린 ‘사업가’의 수완을 십자가로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개인이 머나먼 모로코에 살면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전하며 살고 있는지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슬람은(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지만 모로코는) 결코 이방인 또는 이방 종교에 대해서 극단적인 배타주의가 아니란다. 그들이 판단하는 기준은 항상 ‘믿고 따르는 바가 삶의 신실함을 동반하느냐’란다. 예를 들면, 그가 공원에서 성경책을 읽으면 대부분의 모로코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보낸단다.

“무슨 책을 읽고 있어요?”

“성경이요.”

“성경이 뭐예요?”

“당신들이 읽는 코란과 같은 경전이에요.”

“거기는 누가 나와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요. 물론 하나님도 등장해요.”

“우리하고 비슷하네요. 계속 들려주실 수 있어요? 아니, 저녁 때 당신 집으로 가도 돼요?”

“그럼요. 얼마든지 오세요.”

그렇게 해서 그 이슬람교도는 평신도 선교사댁을 그날부터 드나들기 시작한다. 선교사는 성경 이야기, 자기가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된 이야기 등을 그에게 해 주는데 대략 3~4개월 걸린다. 절반 정도 성경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이슬람 교도는 선교사에게 말한다.

“그동안 말씀하신 것들을 삶에서 보여 주실래요?”

그러면서 선교사가 했던 믿음의 이야기들을 삶을 통해 실제로 그렇게 사는지 아닌지를 한 6개월 쫓아다니며 본단다. 어떤 때는 돈을 꿔 달래 보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데려오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 6개월쯤 지나자 그 이슬람교도가 말하더란다.

“당신이 사는 거 보니까 믿는 대로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당신이 믿는 그 하나님을 믿어 보겠다.”

그는 즉시 성경을 가져가 탐독을 했고, 지금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프랑스에서 신학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 그런 방식으로 평신도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한 이들이 몇몇, 드러내기 어려울 만큼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이러니, 어떻게 한국 교회가 바라는 대로 따박따박 올해는 몇 명, 내년에는 몇 명 전도할 거라고 할 수 있겠어요. 삶을 통해 내가 믿는 대로 사는 걸 보고 나서야 발을 옮기는 사람들인데요. 그러니 한국 교회가 바라는 것처럼 그런 식으론 전도가 되지 않아요. 한국에선 전도하는 사람이 똑바로 사는지 안 사는지, 그가 믿는 대로 생활하는지 안하는지 묻지 않잖아요. 무조건 몇 명 교회로 데리고 오면 상 주고 추켜세우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한 마디 뼈 있는 말을 툭 던진다.

“저는 이곳에 와서야 ‘전도’가 뭔지 알았어요. 그건 내가 믿는 대로 사는 삶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