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신출내기 여사무관, 애플 콧대 꺾었다
입력 2011-10-21 21:08
콧대 높은 애플의 보증수리(A/S) 규정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바꾸게 만든 주역은 임용 2년차에 불과한 25세 사무관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박민영(여·사진) 사무관을 이달의 공정인으로 선정했다. 박 사무관은 큰 고장이 아닌데도 무조건 재조립 휴대전화(리퍼폰)로 교체를 받아야 했던 아이폰 사용자들이 국내 제품과 동일하게 교환·환급·수리를 받을 수 있도록 애플의 A/S 관련 규정 개정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박 사무관은 공교롭게도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출시된 2009년 11월 수습으로 공정위에 배치됐다. 이후 약관심사과에 근무하며 아이폰 A/S 관련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을 목격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증인으로 소환된 애플사 임원이 “한국의 법규를 준수하고 있고, 아이폰 A/S 규정은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정책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1년도 못 가 애플은 태도를 완전히 뒤집게 된다. 지난 8월 애플의 미국 본사 임원은 공정위를 찾아와 정식으로 사과한 뒤 “한국의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을 준수하고 1개월 이내에 제품 교환을 요청할 경우 신제품으로 교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애플은 품질보증서 내용을 바꿔 현재는 신제품으로의 교환을 시행 중이다.
이전까지 가장 유리한 A/S 규정을 적용받던 중국이 구입한 지 15일 이내로 신제품 교환에 제약을 받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대우인 셈이다. 애플이 1년 만에 태도를 바꾸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박 사무관의 끈질긴 노력 때문이었다.
박 사무관은 공정위 약관심사 자문위원인 법률 전문가들과 지난한 토론을 거쳐 애플의 약관이 민법상 하자담보 책임이나 소유권 조항에 위배될 수 있다는 단서를 찾아냈다. 이후 국내외 관련 논문과 해외 법률을 면밀히 연구하고 중국 내에서의 아이폰 A/S 정책을 검토했다.
일부러 본인의 아이폰을 고장낸 뒤 서비스센터를 직접 방문해 A/S를 체험하기도 했고, 피해자 모임 사이트에 가입해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애플과는 전화, 이메일, 면담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설득을 진행했다. 약관을 변경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사태와 예상 가능한 애플의 지위 추락 등을 설명하며 설득과 압박을 적절히 섞는 강온 양면전략을 썼다.
박 사무관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공정위에 자원하게 됐고 즐겁게 배우고 있다”며 “다국적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앞으로도 더 적극 대응해 소비자를 보호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