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삶 가족사 책망서 화해로 승화… 최금진 시집 ‘황금을 찾아서’
입력 2011-10-21 17:23
최금진(41) 시인의 시는 불편하다. 마치 자신의 살가죽이라도 벗겨내듯 숨은 가족사를 털어놓는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느 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성장 과정의 미세한 상처를 헤집으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날선 시선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환영을 만들어낸다.
첫 시집 ‘새들의 역사’(2007)로 제1회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한 그가 펴낸 두 번째 시집 ‘황금을 찾아서’(창비)에 수록된 시들은 한 편 한 편 유장한 서사성과 맞물리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화순 최씨 집성촌이 있다는/ 외딴 마을 어딘가를 내가 헤매고 있었을 때/ 그 후손들 중 하나가 연줄처럼 아득히 풀려나가/ 바람 부는 허공을 헤매고 있을 때/ 땡감처럼 매달린 별 몇 개로도 제 아비를 읽는 밤/ 하늘과 땅은 책의 앞 뒤 표지처럼 맞물려 있고/ 깨알 같은 인간의 이야기는 거기서 만들어진다”(‘소설의 발생’ 부분)
하늘과 땅 사이가 한 권의 소설처럼 보이는 밤, 시인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아버지를 책망하며 화순 최씨 집성촌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떠돌았던 길들을 되짚어보면서 이렇게 다음 연을 이어나간다. “아버지의 무모한 여행담이/ 훗날 더 먼 데까지 나갔다 올 아들의 지도가 되듯/ 나 또한 오래오래 들려줄/ 뼈까지 닳은 내 역마를 생각했다.”
시인이 말하는 소설이란 자신의 성장 내력을 담은 서사를 일컫는데, 이번 시집엔 집안 이야기가 다양한 무늬로 수놓아지고 있다.
“사는 건 줄기차게 도망을 하는 것이다, 우리 가문의 가훈이다/ 할아버지는 제 몸뚱이 하나만 달랑 지고/ 술항아리 속으로 달아나 가랑잎배 한 척 띄우다 가셨다/ 바람 빠진 바퀴와 녹슨 체인 소리를 내며 한강이 흐르는 서울/ 의식주가 아닌 식의주여야 하는 까닭을 깨닫느라/ 단벌 신사복 하나로 살아온 아버지는 항상 징그러웠다/ 월 이십짜리 셋방과 붙어먹은 후에 어머니는 서둘러 나를 낳고/ 사는 게 늘 팔차선 도로를 횡단하는 것 같았다고/ 재빨리 등을 보이는 버릇, 수준급이다”(‘바퀴라는 이름의 벌레’ 부분)
술독에 빠져 살았던 할아버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아버지, 그리고 나로 이어지는 가난과 핍진의 삶은 이 시에서 구어체적 진술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책망은 다음 연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원룸의 막힌 수챗구멍에서 올라오는 썩은 냄새를/ 긍정하자, 새로 만든 우리 집 가훈이다/ 아버지, 우리를 이런 볕도 안 드는 곳에 버려줘서 고맙습니다.”
밑바닥 삶을 살아야 했던 가족애사는 이제 구성원을 바꿔 고모와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시 ‘젖’에서 이렇게 터져 나온다.
“퉁퉁 불어터진 고모의 젖을 대접에 받아/ 늙은 할아버지가 마셨다, 창밖엔 눈이 그쳤고/ 고기 한 근 제대로 못 먹던 때였으므로/ 고모는 연신 쌀죽과 미역국을 마셔가며 젖을 퍼올렸다/ 혀에 암세포가 꽃 무더기처럼 핀 할아버지는/ 눈이 그렁그렁한 어린 소처럼 받아먹었다/ (중략) / 아무것도 줄 게 없어서 고모는/ 비닐봉지 같은 젖이 살에 착 달라붙을 때까지 짰다”(‘젖’ 부분)
최금진은 자신의 집안과 핏줄에 얽힌 이야기들을 무섭도록 사실적인 언어로 진술하지만 단순히 책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의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들려주는 시적 서사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우화가 된다. 아니, 그의 시에서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애초에 책망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보편적인 시적 화자로 등장해 시인 최금진과 공생하고 있다.
“아버지 성묘하고 돌아가는 길에서/ 노란 꽃을 입에 피워 문 돼지감자 한 떼를 만났네/ (중략) / 잘 여문 아버지가 발밑에서 자꾸 꿈틀거렸네/ 돼지감자를 한입 베어물었지만/ 우는 돼지감자를 목구멍에 차마 넘기지 못하였네/ 누가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두려워서 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하였네/ 땅속에 숨은 돼지감자는 토실토실 잘도 여물었네.”(‘돼지감자를 캐다’ 부분)
가족끼리 주고받았던 상처와 고통은 이제 서로가 서로의 삶을 증거하고, 나아가 비참한 현실에 굽히지 않는 의지를 전해주는, 아프지만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동지적 관계로 전환된다. 자신 안에서 언어적 금맥을 발견한 최금진은 누구보다 부자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