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의 野口] 포스트시즌의 매운 맛

입력 2011-10-20 18:16


후훗, 포스트시즌. 야구 판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어떤 팀이 우승하느냐를 놓고 분투하는 단기전에선 매콤한 냄새가 난다. 관중들이나 플레이하는 선수들이나 야구를 가장 극진하게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열망이 평소보다 대박 쫀득한 게 눈에 보일 정도고, 팬들의 기대감 또한 복어처럼 빵빵해 터질 듯한 묘미가 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포스트시즌에 오르진 못했지만 한 팀을 택해 관전 중인데 이런 경기는 궁둥이를 들썩이며 공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이맘때의 승부가 재미있는 건 우승이 걸려있는 큰 경기에서, 아주 사소한 요인들이 승패에 영향을 미친다는 아이러니다. 그렇다보니 도대체가 야구를 느긋하게 볼 수가 없다. 하나하나 집중해서 보게 되는 게 사실이고 그런 세밀한 재미에 따르는 관전 스트레스까지 있을 지경이다.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뻐근한 중압감에 시달릴 것이다. 한방으로 스타가 될 수 있고 실수 하나로 역적이 될 수 있는데 살 떨리지 않겠나. 무조건 잘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바짝 상기되고 집중된 순간을 스포츠 정신의 매콤한 맛으로 본다.

매운 맛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데 도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법은 모르지만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았을 때 이상하게 매운 음식이 당긴다거나, 불황일 때 매운 게 잘 팔리는 점으로 보아 대략 맞아떨어지는 것 같긴 하다. 나는 포스트시즌처럼 이기면 대박이고, 지면 쪽박인 큰 경기가 주는 매운 맛에서 최근 먹고 살기 어지간히 빡빡해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고 있다. 캬아, 동점이나 역전 홈런, 극적인 위기 상황에서 솎아내는 폭풍 삼진, 불안한 경기 흐름을 와락 건져내는 호수비, 그런 것들의 매콤한 맛이란! 낙지볶음보다 맛있고 타우린이 풍부하다고 본다. 심지어 나도 인생에서 그런 극적인 플레이를 해내게 될 것만 같은 용기도 생긴다.

그런데 말이다, 매콤한 장면을 기대하며 야구를 보는데 게임이 더럽게 안 풀리면 퍽 답답하기 마련이다. 어휴, 하면서 탄식하다 보면 야구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면 끝이고, 완전히 떨어진다는 불안감이 주는 너저분한 맛이라니. 클로즈업 된 야구감독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화면에 드러나 감정이 이입되기도 한다. 야구는 다 좋지만 감독만은 좋은 직업으로 보이진 않는다.

어쨌든 야구야 뭐 이기면 당연히 펄떡펄떡 신나고 지면 턱관절에서 힘이 빠지지만 부디 야구를 즐기는 거지 승리를 즐기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승패보다는 야구 자체가 더 재미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어느 팀이 우승하든 모든 야구팬들이 스트레스를 받기보단 매콤하게 즐기고 풀면서 행복해지면 좋겠다. 이 축제가 지나가면 내년 봄 개막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말고 야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없어야 하니까 말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