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첫 프로슈머 미팅… “같은 작품 수십번씩 보고 장단점 꼭 집어내요”

입력 2011-10-20 17:34


“크리스마스 시즌 때는 음악을 라이브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뮤지컬은 배우들을 보러 가는 면도 있지만 연주자들에 대한 기억도 많이 남거든요.”(한유선)

“대체적으로 라이선스 뮤지컬은 플롯이 단순해요. 반면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같은 경우 일곱 명의 배역들이 가진 이야기가 제각각 있는 게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해요. 장유정 연출님 작품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차용홍)

지난 14일 저녁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위치한 CJ E&M 음악공연사업부문 사무실에서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첫 프로슈머 미팅이 열렸다. ‘오! 당신이…’는 대학로에서만 2000회 공연을 돌파하며 롱런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극장 뮤지컬. 이 미팅에 초청된 고객들은 ‘오! 당신이…’를 최소 5번에서 최대 100번 이상 관람한 20∼30대 마니아 관객들이었다.

이들의 프로필을 잠깐 살펴보자. 한 작품을 100번 넘게 보았다는 말에 ‘뮤지컬 업계 지망생이라도 되는가’라고 생각했으나 이들은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학생이었다. 업종이나 전공이 음악 혹은 뮤지컬인 것도 아니다. 대기업 과장,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 중소기업 사원….

이들은 “볼 때마다 위로를 받는 기분이어서” 혹은 “누구와 함께 보더라도 좋아서” 여러 번 공연을 관람한 것이다. 티켓부스에서 마주치는 공연기획사 관계자들과는 어느덧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공연기획사는 향후 이 공연의 마케팅 개선 방향 등에 대해 듣기 위해 이들을 ‘모신’ 것이다.

이들은 “MR(반주음악)로 나오고 있는 음악이 라이브로 나왔으면 좋겠다”, “현재의 마케팅 키워드인 ‘기적’이라는 단어는 촌스럽다”, “5자평을 트위터에 남기는 입소문 마케팅을 했으면 좋겠다” 등 거침없는 의견을 쏟아냈다. 회의를 진행한 스토리피 마케팅 담당인 한정선 팀장은 “여러분들의 말은 마케터 입장에서 봐도 정확한 것”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같은 공연을 수십 번 관람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마니아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공연기획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다. 단순히 공연 관람 횟수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가 귀중한 것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입소문을 내는 이들 없이는 공연 흥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CJ E&M 예주열 프로젝트매니저는 “마니아 관객들은 공연계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말했다.

“이분들을 통해서 입소문이 퍼지거든요. 일반 관객들은 주위 사람들한테 추천을 받아 공연을 보잖아요. 새 공연을 알아서 보는 마니아 관객들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분들이에요. 마케팅의 핵심이 되는 분들이죠.”

그렇기에 프로슈머 미팅을 통해 작품의 제작·마케팅 방향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마니아 관객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예 매니저는 덧붙였다. “이들의 의견을 100% 반영하기는 물론 쉽지 않아요. 하지만 5자평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마케팅은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죠. 라이브 음악 연주는 예산상 쉽지 않지만 3000회 공연 등 특별한 날 이벤트로 활용할 수 있어요.”

이는 다른 공연 기획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공연 1500회를 돌파한 뮤지컬 ‘빨래’ 기획사인 명랑시어터 수박의 장지현씨는 “재관람 관객들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매우 많이 준다”며 “지난달부터 그동안 없던 학생할인 제도를 만들었는데 재관람 관객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소극장 연극을 주로 올리는 연극열전은 아예 마니아 관객들을 회원으로 관리하며 제작보고회나 프레스리허설 등 언론에만 공개하는 행사에 정기적으로 초청하기도 한다. 연극열전 박혜숙 과장은 “마니아 관객들의 참여율은 평일에도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마니아들은 공연기획사 및 홍보사들에 가장 귀중한 존재이면서 가장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공연은 수십 번도 찾지만 작품이나 마케팅이 별로라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발길을 끊기 때문이다.

‘오! 당신이…’의 프로슈머 미팅에서는 대학생 옥채라씨가 “기획사가 공연 트위터나 클럽 업데이트 관리를 마케팅 기간에만 열심히 하는 등 상업적인 관계라는 느낌을 주면 실망하게 된다”고 말하자 담당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CJ E&M 김부경 대리는 “마니아 관객들에게 상업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순간 끝이다”라고 말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