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검소한 결혼식
입력 2011-10-19 18:04
10여년 전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때의 일이다. 1년 새 현금이 수천만원 불어난 중앙부처 산하 기관장이 있었다. 연봉이 수억원인 금융기관 수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연봉이 훨씬 적은 기관장이 큰돈을 저축했으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검증 차원에서 전화했더니 “애 결혼식 때 들어온 축의금을 쓰고 남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경력으로 보나, 지위로 보나 그만큼의 축의금은 들어올 것 같기도 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건넨 부조금을 합산해서 당시 가치로 환산하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의 눈에는 거금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때보다는 요즘 세상이 많이 투명해진 모양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자녀 결혼식이나 부모 장례식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4월 장녀 결혼식을 비밀리에 치렀다. 결혼식에 참석한 외교부 직원들이 없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김무성 의원도 지난 3월 장녀 결혼식을 비밀에 부쳤다. 양가 가족과 친지 50여명씩만 참석했고, 수행비서도 결혼식을 몰랐단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동료 의원들에게 청첩장을 돌리지 않고 차녀 결혼식을 올렸다. 미국 방문 중에 부친상을 당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예정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조용히 빈소를 찾았다.
김 장관, 김 전 원내대표, 김 전 의장, 김 위원장의 국정수행능력이나 의정활동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논외로 치겠다. 다만 집안의 경조사에 관한 한 이들의 행동은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 한편으로는 자녀 결혼식과 부모 장례식을 ‘007 작전’처럼 치러야 하는 세태가 안타깝다.
올해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혼례는 영국 윌리엄 왕자와 평민인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일 것이다. 이들의 결혼식을 7200만명이 온라인으로 지켜봤다니 단일 이벤트 생중계로는 단연 세계기록감이다.
가난하지만 세계에서 국민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부탄의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의 결혼식도 언론 조명을 받았다. 평민을 왕비로 맞이한 왕추크 국왕은 검소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다른 나라 정상이나 왕족을 한 명도 초대하지 않았다. 국민의 삶을 이해하려고 시골집에 거주하는 왕추크 국왕 내외는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으리라. 한국에서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검소한 결혼식에 앞장서길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