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만민됴흔긔별] ‘이 글은 사람의 글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입력 2011-10-19 17:46


‘만민됴흔긔별’ (펜윅 지음, 1899)

‘만민됴흔긔별’은 선교사 펜윅(Malcolm C Fenwick·1863∼1935)이 펴낸 전도용 소책자인데, 순한글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12쪽 분량의 이 소책자는 제목 그대로 ‘만민에게 좋은 소식’ 곧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발간한 것이다. 이 책자는 첫머리에서 “이 글은 사람의 글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묵시로 하신 말씀이라”고 밝힌 다음 하나님의 구속 섭리,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주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 등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제시한다.

‘만민됴흔긔별’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구절들로 채워져 있는데, 첫 페이지는 ‘하나님의 하신 말씀’을 설명하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외아들을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실 것”임을 알린다(요한복음 3:16).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만민에게 하신 말씀’을 설명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평안하게 하리라”는 성경 말씀을 들려준다(마태복음 11:28).

펜윅은 항상 제자들에게 성경 연구보다는 직접 성경을 읽으라고 가르쳤다. 그는 ‘만민됴흔긔별’ 외에도 서민들까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조선말로 이야기하듯이’ 성경을 번역했다. 1919년에 그가 출판한 원산번역 ‘신약젼셔’는 최초의 개인 번역 한글 성서인데 ‘처녀’를 ‘새악씨’로, ‘석청’을 ‘산꿀’로 옮기는 등 우리 토속어를 그대로 살려내었다.

캐나다에서 성공한 청년 실업가로 철물유통회사를 운영하던 펜윅은 1889년 평신도 선교사로 내한하여 황해도 소래에서 수년간 활동했다. 1893년 캐나다로 가서 선교 훈련을 받고 침례교의 목사가 되어 1896년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왔다. 이후 함경도 원산을 거점으로 40년간 선교하였는데, 1906년 한국 침례교의 전신인 ‘대한기독교회’를 창립하고 초대 감목으로 추대되었다. 대한기독교회에서는 매월 ‘달편지’를 발간해 교단 소식, 성경공부 자료, 설교 내용 등을 교인들에게 전해주었다.

펜윅은 처음 백인우월주의에 빠져 있었으나 자신보다 더 은혜롭고 효과적으로 전도하는 한국인 전도자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자서전(The Church of Christ in Corea·1911·이길상 역)에서, ‘내가 철저히 실패한 곳에서 (신명균 목사 같은) 한국인이 거둔 눈부신 성공’을 확인함에 따라 교만하던 마음이 사라져갔으며, ‘(전도) 방법도 동양이 서양보다 더 성경에 가깝다고 수긍하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더욱이 한글과 한국문화를 공부하면서 한국의 매력에 빠져들어 한복을 즐겨 입고 초가집에 거주하며 김치와 같은 우리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한국인의 가능성을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은 인내와 겸손이라는 뛰어난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훌륭한 특성 때문에 한민족은 오히려 온갖 정치적인 어려움들을 겪어 왔다. 관대도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특성이다. 인내! 겸손! 관대! 성령께서 이렇게 풍부한 천연 광맥을 어떻게 처리하실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펜윅은 한국인 신자들을 교육하여 1903년 신명균에게 공주성경학원을 맡겼고, 1914년 제2대 감목으로 이종덕 목사를 추대해 최초의 토착인 감목을 탄생시켰다. 나아가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오지 전도에 힘을 쏟아 1906년 한태영을 첫 번째 해외 선교사로 간도에 보냈다. 그 후 계속해서 시베리아, 만주, 몽골 등으로 한국인 선교사들을 파견해 많은 교회들이 외국 땅에 세워지게 되었다. 이러한 펜윅의 활동은 현재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라 자부하는 한국 해외 선교의 시원인 셈이다.

부길만 교수(동원대 광고편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