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하버드 천재들, 하나님을 만나다
입력 2011-10-18 17:20
지성의 회심/켈리 먼로 컬버그 편저/배덕만 옮김/새물결플러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해도 된단다.” ‘*%#$@^!’ 확 깨는 표정이다. 내가 로고스서원의 청소년인문학교에 갓 들어온 아이들에게 늘상 하는 말이다. 제 아무리 인문학교라도 명색이 목사이고, 로고스서원인데, 신앙 흔들리기 딱 좋은 10대들에게 어쩌자고 이토록 불온하고 불손하기 그지없는 언사를 내뱉는단 말인가? 인문학교에 찾아온 불신자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 딴 말이나 하는 나도 참 삐딱한 목사다.
이유는 딱 하나다. 자신이 있으니까. 기독교 복음은 본시 성가시게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님은 지성의 창조자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질문을 하시는 분이시고, 동시에 우리 물음에 답하시는 분이시다.
물론 하나님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분이시다.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분은 정녕 아니다. 말이신 분, 그러나 말 너머의 하나님. 하여,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게다. 다만, 근거를 제시하라고, 생각하라고 격려하고 다그친다.
위대한 복음에 대한 담대한 자신감, 그러나 초라한 지성.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 땅에서는 기독교가 그다지 지성과 연결되지 않는다. 슬프게도 맹목과 맹신, 맹종의 다른 이름이다. 한국 문학계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소설가 김승옥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작품 활동을 접었다. 한국 기독교와 한국 지성의 거리가 참 멀다. 최근 서영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와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열림원) 등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퍽 다행이다.
가능성이 아니라 실험을 끝내고 검증을 통과한 사례가 있다. 베리타스 포럼(Veritas Forum)이다. 하버드대학교의 모토가 진리를 뜻하는 라틴어 베리타스이다. 진리의 토대 위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종내는 진리를 살아내라고 설립된 대학에서 진리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허무와 회의에 빠져드는 것은 왜일까? 한편으로 계몽주의와 제국주의, 다른 한편으로 인본주의와 상대주의의 집중포화를 피해 너른 진리의 영토를 내어주며 후퇴만 일삼는 것을 언제까지 수수방관할 참인가?
켈리 먼로 컬버그가 일어섰다. 그녀가 하버드에서 발견한 것은 하나님 없는 베리타스였다. 이는 비단 하버드의 자기 배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소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슬펐고 외로웠다. 그리고 제안했고 초대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임을 일방적 선포나 우격다짐을 벌이는 우리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따뜻한 환대 가운데 거침없이 묻고, 답하는 광장을 열자고. 그곳에서 온갖 사람, 모든 학문이 춤추고 노래하고, 대화하고 토론하자고 말이다.
하여, 하버드 동문과 재학생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하버드에서 만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우울과 중독에 대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 경험했던 놀라운 변화를 그들은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공부하면서의 어려움도 숨김없이 들려주었다. 용기를 내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마더 테레사, 오언 깅그리치 등 세계적인 석학과 저명한 인사들에게도 부탁했다. 그들도 응답했다. 그렇게 해서 보내온 글들이 묶여 ‘지성의 회심’이 탄생했다.
제일 먼저 읽었던 글은 마더 테레사의 것이었다. 풍요로운 현대인에게도 굶주림이 있다. 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랑에 대한 굶주림이다. 하나님에 대한 굶주림이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공허함이다. 그러나 여정은 간단치 않다. 그래도 과학과 교육, 경제와 정의를 씨름하던 지식인들이, 힌두교와 이슬람, 유대교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신앙과 신념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진리를, 그러나 이전의 것이 디딤돌이 되어 예수를 만나고 진리를 발견했다.
그러나 지성에도 한계가 있다. 학문의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문제도 수두룩하다. 대학이 돈의 영향권 하에 있고, 의학은 치료에 애를 먹고, 교육은 사람을 다 바꾸지 못하고, 과학만으로 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고, 학위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아, 바로 그러하기에 지성이 아니던가. 그것이 지성의 능력이다. 하나님보다 못하고, 짐승보다 못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이성이라고 말한 사람은 파스칼이다. 해서, 이 책은 파스칼의 후예들이 쓴 단상이라 하겠다.
지성인들이 회심한 이야기를 들으니, 포럼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진다. 이 책의 엮은이가 직접 쓴 ‘베리타스 포럼 이야기’(IVP)를 읽을 일이다. 두 책은 짝패다. ‘지성의 회심’의 원제는 ‘하버드에서 하나님 찾기’(Finding God at Harvard)이고, ‘베리타스 포럼 이야기’는 ‘하버드를 넘어 하나님 찾기’(Finding God beyond Harvard)이다. 그러니까 전자가 하버드를 다녔고 가르쳤던 이들의 지성복음이라면, 후자는 미국의 방방곡곡과 전 세계로 흩어지고 퍼지는 지성행전이다.
강연 내용을 더 알고 싶다면 ‘세상이 묻고 진리가 답하다’(IVP)를 볼 일이다. 이 책은 베리타스 포럼의 명 강연을 추려 편집했다. 강연자의 면면과 주제만 훑어보아도 지름신이 임한다. 내친 김에 한 권 더 추천하자. ‘기독교 철학자들의 고백’(살림)은 일급 철학자들의 영적 자서전이다. 내 전공이 기독교철학이라 좀 안다.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설명하여 재미없고 딱딱하기 이를 데 없다. 한데, 신앙을 고백하는 철학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품위와 재미가 넘친다.
독자들이 책을 덮으면서 외려 지적 공허감을 느낄 것 같다. 기독교 신앙의 지성적 근거, 세속적 학문의 영성적 토대를 확인한 마당에 웬 허전함이란 말인가. 하나는 ‘우리에게 이런 지성이 없을까’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는 이런 포럼이 없을까’ 라는 것이다. 미국 얘기 자꾸 해서 뭐하자는 건가. 그럼 우리는?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하면 된다. 부러워하는 사람이 하기다. 말한 사람이 하면 되는 거다.
베리타스 포럼, 안철수의 청춘콘서트와 오마이뉴스의 북콘서트를 보면서 이거 정말 해 볼 만한 일이다 싶다. 나설 사람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쉽지 않다. 여건은 반반이다. 부산이다. 단신이다. 누가 올까 걱정이다. 허나, 지성의 하나님이 계시고, 기독지성의 고수도 분명 있다. 선배격인 이 책도 있으니 그나마 낫다. 하여, 지성의 하나님을 만나고 싶거들랑, 지성의 향연을 만끽하고 싶거들랑, 지성의 광장을 마련하고 싶거들랑 삼가 부탁한다. 이 책부터 읽으라고. 그것도 지금 당장!
◎ 마더 테레사의 글
“풍요로운 현대인에게도 굶주림이 있다. 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랑에 대한 굶주림이다. 하나님에 대한 굶주림이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공허함이다.”
글=김기현 목사(부산 로고스교회 담임, ‘글 쓰는 그리스도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