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검증 vs 네거티브
입력 2011-10-17 17:47
처음에는 정당 대 무당파(無黨派)의 대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당파 후보가 무소속을 유지하면서도 야당과 손을 잡자 인물 검증 대 정권 심판의 구도로 변질됐다. 그러더니 검증이 ‘약발’을 발휘하는 듯하니까 이제는 검증 대 네거티브 캠페인의 싸움이 됐다. 코앞에 닥친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다.
범야권이 밀고 있는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과 나경원 후보 측의 각종 의혹 또는 문제 제기가 검증인지 네거티브 공세인지를 놓고 양측이 싸우는 모습이 가관이다. 한나라당과 나 후보 측은 ‘국민의 알 권리’까지 거론하면서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야권과 박 후보 측은 검증이 아니라 ‘흑색선전’ ‘막말의 악질적인 구태정치’라고 주장하며 정면 대응하겠다고 분기탱천이다. 그 자체로 가히 구경거리다.
알 권리인가, 구태정치인가
네거티브 캠페인이 무엇인가? 자신 또는 자신의 정책이 가진 좋은 점,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상대방이나 상대방 정책의 안 좋은 점,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써 반사 이익을 챙겨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전략을 말한다. 사실 상대 후보의 정책에 내재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나쁠 것도 없다.
하지만 네거티브 선거전은 그 이름처럼 ‘네거티브’하게 인식된다. 정책적 문제점보다는 주로 후보자 개인의 인간적 약점이나 흠을 들춰내는 탓이다. 미국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을 구어로 흔히 mudslinging(진흙 던지기)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전투구(泥田鬪狗)다.
문제는 후보자의 경력, 도덕성, 국가관, 이념 등에 대한 검증과 네거티브 캠페인을 구분하는 분명한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뜬소문 등에 근거한 문제 제기라면 네거티브 공세이고 최소한의 근거라도 있다면 검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명확하지는 않다. TV 코미디 프로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라도 동원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검증을 위한 일체의 문제 제기를 네거티브 공세로 몰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나 후보도, 박 후보도 마찬가지지만 지금까지는 박 후보에게 더 해당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박 후보는 학력 변조, 재벌 후원받기, 안보(또는 대북)관 등 각종 의혹과 문제 제기에 구체적으로 적극 해명하는 대신 “역사상 가장 추악한 네거티브”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폄훼하거나 감정적으로 반박하는 데서 그치고 있다. 그나마 내놓은 일부 해명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애정남(애매하고 정체모를 남자)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무엇으로도 검증 회피 안돼
시민운동가로서 박 후보는 명망이 높다. 그런 반면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해온 그의 국가관이나 겉으로 알려진 학력 등에 관해 언론과 여론의 검증을 거친 적은 한 번도 없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에 따르면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선출직’이라는 서울시장이 되고자 한다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검증받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도 일체의 검증 요구를 네거티브 공세라는 식으로 비켜가려는 것은 시민운동가로서 쌓은 좋은 이미지만 갖고 가겠다는 얘기다. 어불성설이다.
박 후보 측은 나 후보를 상대로 네거티브 캠페인을 펼칠 게 많지만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 후보측도 나 후보를 상대로 검증할 게 있다면 내놓고 해야 옳다. 설령 네거티브성이라 해도. 변죽만 울려댈 필요가 없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물론 지양돼야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잘못된 후보자를 걸러낼 수 있는 검증마저 지양돼서는 안 된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