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아뿔싸, 노벨문학상

입력 2011-10-17 17:51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과정을 둘러싼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스웨덴 검찰이 올해 수상자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선정 사실에 대한 사전 유출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지난 8일 밝힌 게 대표적인 예이다. 스웨덴 검찰이 거론한 혐의점은 트란스트뢰메르의 수상확률을 13대 1로 예측하고 내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수상자 발표 몇 시간 전에 수상확률을 2대 1로 대폭 상향조정한 데 있다. 검찰이 의혹을 품는 건 당연지사이다.

더구나 이번 수상은 1974년 역시 스웨덴 작가인 에이빈 욘손과 하리 마르틴손의 공동 수상 이후 37년 만에 이루어진 스웨덴 문인의 여덟 번째 수상이라는 점에서 노벨문학상이 스웨덴 국내 문학상으로 축소된 느낌을 준다. 이는 96년 폴란드의 여류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이후 15년 동안 명맥이 끊어졌던 시인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갔다는 의미를 상쇄시킨다. 그만큼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은 신선도라는 측면에서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트란스트뢰메르의 문학성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인으로 지목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9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반신마비 상태에서도 96년 ‘슬픈 곤돌라’를 발표하며 창작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2004년엔 시집 ‘위대한 수수께끼’를 펴내며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그의 수상에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스웨덴 문학이나 스칸디나비아 문학보다 더 절실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지역 문학의 소외감은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베팅 사이트에서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와 알제리 시인 아시아 제바르, 그리고 한국 시인 고은을 유력한 수상 후보자로 거명했다는 사실은 아시아와 아랍 지역 문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개인적인 심사이지만 스웨덴 문인에게 여덟 번이나 돌아가는 노벨문학상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1901년 프랑스의 고답파 시인 르네 쉴리 프뤼돔이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된 이래 노벨문학상의 유럽 편중 문제는 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왔다. 2000년 이후 12명 수상자 중 가오싱젠(중국), J M 쿳시(남아프리카공화국), 오르한 파무크(터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를 제외한 8명이 유럽 작가였다.

이쯤 되면 노벨문학상은 유럽 입장에서라면 다른 지역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집단적 허구이자 하나의 우화일 뿐이다. 그것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고는 오직 노벨이 발명했다는 화약이며 노벨이 벌어들였다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지켜보면서 인류 최고의 명예인 노벨상의 출처가 화약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그만큼 인류가 쌓아올린 인문학 지식과 문학 언어의 총아로서 노벨문학상의 폭발력은 대단하다. 반면 그 폭발력은 늘 아시아와 아랍 지역을 비껴갔다. 아니, 소외시켰다.

매년 되풀이되는 노벨상 잔치에 아도니스와 제바르와 고은이 초대받지 못했더라도 그들은 이미 그 지역 문학에서 부족언어로 일가를 이룬 최상의 언어 예술가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도 고은 시인은 노벨상을 비켜갔습니다”라는 방송 멘트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한국 문학은 유럽 문학에 비해 우수하지 않은 게 아니라 단지 인연이 좀 없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내년 혹은 내후년에 시인 고은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게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야 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고유 업무이기 때문이다.

정철훈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