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뒷전 파벌싸움” VS “폐지땐 新교육관치”… 국·공립대 총장 직선제 毒인가 藥인가
입력 2011-10-16 22:47
부산대는 요즘 4개월 만에 다시 총장 선거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선거에서 선출된 정윤식 교수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임용제청을 거부당해 다음달 11일 재선거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2009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교수 100여명을 만나 선거운동을 하고 올해 5월에는 선거인 37명을 모아 놓고 지지를 부탁한 혐의로 부산지법으로부터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부산대 총장선거추진위원회 관계자는 16일 “총장 당선자가 임용제청을 거부당해 재선거를 실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음달 실시되는 선거에도 10여명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최근 ‘국립대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교육대학을 시작으로 국·공립대의 총장직선제 폐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교과부는 총장직선제의 부정적인 사례로 부산대를 꼽고 있다. 교과부의 강력한 유도로 불과 한달여 사이에 전국 11개 교육대와 한국교원대가 총장직선제를 폐지키로 했다.
◇총장직선제 폐지 밀어붙이는 교과부=교과부는 전국 국·공립대 중 우선 규모가 작은 교육대학에 총장직선제 폐지를 압박하고 있다. 직선제를 폐지한 학교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하고 교수 정원을 우선 배정하는 반면, 직선제를 고수하는 학교는 정원 감축 등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당초 직선제 고수 입장을 밝혔던 부산교대도 14일 뒤늦게 직선제 폐지에 동참했다. 그러나 교내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부산교대 총학생회는 수업 거부에 나설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광주교대도 직선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교과부가 입학생 정원을 감축하겠다고 압박하면서 반대론이 수그러들었다.
총장직선제 폐지는 지난 8월 교과부가 시안을 발표한 ‘2단계 국립대 선진화방안’의 핵심이다. 기존의 총장직선제가 교수들의 이해관계만 반영하고 있다며 ‘교수들의 투표에 의한 선출’을 배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교과부는 직선제 대신 ‘대학의 장 임용추천위원회’ 산하에 선발위원회를 구성해 대학 내·외부에서 총장 후보자를 발굴토록 하자는 입장이다. 선발위원회에는 외부인사 비율을 3분의 1이상으로 하고 교직원·학생 등의 추천인사도 포함시킨다. 여러 총장 후보들이 서면심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경쟁하고 위원회가 최종 선정하는 방식이다.
◇직선제 폐지가 개혁 VS 직선제는 대학 민주주의=국립대 총장 직선제는 민주화 이후인 1988년 국립대들이 도입하기 시작해 현재 모든 국·공립대가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둘러싼 교내 파벌싸움과 각종 공약 남발로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등 부작용이 컸다는 게 교과부 시각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총장 선출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교수들이 연구와 교육에 소홀해지고 선출 뒤에도 총장이 자신을 지지한 교원들의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힌다”며 “도입 초기에는 대학의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지금은 폐해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국립대와 달리 사립대는 전체 153개 4년제 대학 중 극히 일부만 직선제를 한다. 하지만 일부 직선제 실시 학교들은 몸살을 겪고 있다. 최근 총장 선거가 치러진 조선대에서는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교수가 2위였던 후보에게 이사회에서 밀려나자 법원의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내홍을 앓고 있다.
그러나 국·공립대 교수들은 직선제는 법이 보장하는 것으로 이를 폐지하라고 하는 것은 ‘교육관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 총장직선제는 법적 근거가 있다. 교육공무원법 제24조에 따르면 국립대 총장은 대학의 추천을 받아 교과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용한다. 대학은 ‘직접 또는 대학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총장 후보자를 선정할 수 있기 때문에 직선제를 선택한 것이다. 전국국공립교수회연합회 김형래 사무총장은 “교과부가 직선제 폐지를 행·재정적 제재와 연결시키면서 사실상 관치를 하고 있다”며 “총장직선제가 폐지되면 교과부나 정치권에 가까운 인사들이 총장으로 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과부가 내년부터 총장직선제 폐지를 각종 국·공립대 평가의 주요 지표로 삼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립대 교육역량강화사업 대학 선정에는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가 100점 만점에서 15점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다른 평가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대학도 직선제만 폐지하면 상위권 대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총장 직선제 폐지가 대학교육 수준 향상과 등록금 인하 등 대학 경쟁력 강화하는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교과부는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가 대학 교육의 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한 바 없다”며 “대학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정부 입맛에 맞는 총장을 선출해 국립대 법인화에 속도를 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