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잡스를 도울 수 없었나… 최원철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장과 ‘넥시아’
입력 2011-10-13 18:23
‘스티브 잡스, 최동원, 장효조, 박완서, 장진영···.’
모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이는 암 발견 2개월 만에 세상과 작별했고, 어떤 이는 오랜 기간 투병하다 숨을 거뒀다.
암은 종잡을 수 없다. 누가 언제 암에 걸릴 지 예측할 수 없고, 왜 걸리는 지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두렵다.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가 지난해 말 평균수명 80세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암에 걸릴 확률은 34%였다.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는 시대다.
암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완치’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재발하지 않기를, 전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마음을 이 남자는 안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장인 최원철(48) 교수. 그는 17년을 말기 암 환자들과 함께 했다. 정확히 말하면 항암치료에 실패한 4기 환자(진행암 환자)들이다. 최 교수가 처음 옻나무 추출액을 한방암치료제로 내놓았을 때 세상은 그를 조롱했다. 고발도 당했고 식약청 조사와 검찰 수사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넥시아(NEXIA)’란 이름으로 암 치료에 다가갔다. 넥시아는 ‘next intervention agent’의 줄임말이다. 서구의학으로 치료를 해봐도 안되면 그 다음 시도해보자는 뜻이다. 최 교수가 목표로 삼은 건 두 가지였다.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가능한 줄이는 것, 나아가 생존 기간을 늘리는 것. 암 환자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지난 1998년부터 그에게 치료를 받은 진행 암 환자 216명 중 2011년 10월 현재까지 53명이 생존해 있다. 최 교수는 그러나 떠나보낸 환자들이 더 많다며 말을 아꼈다.
지난 6일, 서울 고덕동 강동경희대병원 2층 한방암센터 최 교수 진료실을 찾았다. 넓은 방엔 칠판과 대형 LCD TV, 긴 소파가 놓여 있었다. 최 교수는 한방사상체질과와 한방신경정신과 임상교수 2명과 간호사 1명, 연구원 1명과 함께 있었다. 환자가 들어와 소파에 앉자 최 교수는 칠판 앞에 서서 강의하듯 진료를 시작했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오후 1시, 어두운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는 유방암이 간으로 전이된 60대 여성이었다. 최 교수에게 1년 째 치료를 받아 왔다는 그녀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실은 처음 치료 받았던 S병원 선생님께 다녀왔습니다. 그 선생님은 신약을 복용해보자고 하십니다. 나온 지 1년 된 신약으로 1년 생존자가 한 명 있다 합니다. 평균은 6개월, 짧게는 2개월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지난해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다. 4기는 말기 직전이다. 넥시아를 복용하다가 다른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병행했지만 항암치료 수개월 후 배가 아파 한동안 넥시아 복용을 끊었다고 실토했다. 누군가 비타민이 좋다 해서 고용량 비타민을 먹기도 했다.
최 교수는 성을 냈다.
“배가 아픈 건 항암제 사용 중에 오는 흔한 증상이예요. 10개월 이상 써 온 약이 부작용이 없었는데 왜 기존 약을 끊어요. 새 약을 끊어야죠. 고용량 비타민을 먹었다고 왜 얘길 안했어요. 그건 약입니다.”
최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암은 자랐지만 어혈(순환이 제대로 안 돼 피가 엉긴 것)이 없고, 암이 자라는 속도가 더딘 ‘서증암’으로 응급 상황이 아니며 여타 검사 결과도 문제없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 살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그녀는 여전히 두려웠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진료를 마친 뒤 최 교수가 나지막히 말했다. “이 환자는 내가 살려 볼 겁니다.”
스티브 잡스의 실기(失期)
지난 6월, 최교수에게 스티브 잡스를 치료해달라는 부탁이 들어 왔다. 내원 환자 중 한 명이 잡스를 치료해보겠냐고 물어왔던 것. 그 환자는 재미사업가로 치료를 위해 1년째 한국과 미국을 오갔다. 잡스와는 친구사이라 했다.
최 교수는 하지만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잡스의 병력과 최근 사진을 들여다보고 내린 결론은 ‘실기’였다. 최 교수는 잡스가 이미 ‘악액질’이 완연해 4기에서도 말기에 접어든 상태로 판단했다. 악액질이란 이른바 피골이 상접하는 고도의 전신쇠약증세다.
잡스처럼 4기나 말기에 접어든 환자들은 넥시아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 본다. 하지만 입으로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환자, 악액질이 완연해 연명치료 단계로 넘어간 환자에겐 넥시아를 쓸 수 없다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10월 6일(현지시각 5일) 췌장암에 따른 호흡정지로 생을 마감했다.
넥시아가 뭐 길래 잡스를 치료해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왔던 걸까. 사실 넥시아는 만병통치약도 암 완치제도 아니다.
넥시아의 주 성분은 옻나무 진액에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을 제거한 천연물이다. 옻은 독성이 강한데, 독을 제거하면 약이 된다. 전통 의학서인 ‘향약집성방’과 ‘의학입문’에도 옻나무 추출물인 ‘이성환’이 어혈을 풀고 종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소개돼 있다.
넥시아의 치료 원리는 간단하다. 호막생기(護膜生肌). 암세포에 막을 씌워 정상세포로 침투하는 걸 차단해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굶어 죽게 하는 게 ‘호막’이다. 여기에 암 환자의 기를 북돋는 이로운 약재들을 환자의 증상별로 처방하는 것이 ‘생기’다.
연구팀에 따르면 넥시아가 가장 효력을 발휘하는 단계는 항암치료 1차 실패 후다. 13년째 생존해 있는 진행암 환자들은 모두 항암 치료 1차 실패 환자였다. 단, 서서히 자라는 암과 휴지기에 있는 암은 항암치료 횟수와 무관하게 성과가 나타났다.
치료의 시작
폐암 4기 50대 여성 환자가 올케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최 교수는 한참 어혈 얘기를 꺼내다 폐암의 원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준 선생님이 보셨으면 그랬을 거예요. 몸과 마음을 차갑게 하고, 에어콘이나 냉장 음식을 좋아하면 반드시 폐가 상한다고.”
환자가 끄덕였다.
“제가 그랬어요. 30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최 교수는 그러나 더 큰 원인은 마음에 있다고 했다.
“더욱 시린 건 마음이 시린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 가슴이 시리다고 하잖아요. 가슴이 시려서 우는 거죠. 이주일씨가 폐암으로 사망했을 때 모두가 담배 때문이라 그랬죠. 하지만 이주일씨는 금연한 지 오래됐어요. 그게 아니라 애지중지하던 독자인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자식을 가슴에 묻었으니 가슴이 시린 거예요.”
암의 원인은 다양하다. 유전요인, 공해, 전자파, 음식, 스트레스···.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우리 몸엔 돌연변이 세포가 자라난다. 최 교수는 암 발병의 가장 큰 변수를 ‘마음가짐’이라 봤다. 삶의 태도와도 직결된다.
“장수촌에 가보세요. 그 분들은 모든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죠. 우리들은 어떤가요.”
과시하려는 마음에 공허함이 깃들고, 미워하는 마음에 고통이 싹트고, 절망하는 마음엔 슬픔이 스며들고 모든 부정적인 마음가짐은 세포를 우울하게 만든다. 이른바 ‘세포 우울증.’ 그게 암이라고 했다.
암에 걸린 뒤에도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암의 공포가 주는 우울감이 병을 더 깊어지게 하기 때문. 진료가 끝날 즈음, 그는 환자에게 숙제 하나를 내줬다.
“시누 올케 사이랬죠. 오늘 올케한테 고맙다고 예쁜 브로치 하나 사주세요. 기(氣)는 그렇게 얻어가는 거예요.”
둘은 웃으며 진료실을 나갔다.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 암 치료의 시작이었다.
암 예방법
모든 말기암 환자를 완치하는게 넥시아팀의 궁극적인 목표다. 하지만 현재로선 암을 키우지 않는 것, 그에 앞서 암을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넥시아 연구팀은 암 예방법으로 ‘인프레그(in preg) 요법’을 제시했다. 임신 중 상태를 의미하는 ‘in pregnancy’의 약자로 임신부처럼 살라는 것이다. 기원 후 2세기 경 쓰여진 영추(靈樞)의 옹저(癰疽)편에 기록된 ‘부정거사(扶正?邪·정기를 북돋워 나쁜 기운을 제거한다)’에 나온 개념이라고 한다.
“마치 화학비료로 땅이 산성화되면 퇴비로 되살리듯, 화학 문명의 지배수준이 임계치에 도달했을 때 임신부처럼 생태에 순응하며 생명력을 높이자는 얘기입니다.”
화학 약물과 몸에 나쁜 음식을 일절 삼가고 제철 음식을 섭취하며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임신부의 삶.
“임신했을 때 어떻게 했어요? 태아를 생각해서 술, 약 안 먹었죠? 말도 삼가고 행동도 삼가고. 그런데 출산 후엔 다시 엉망이 돼요. 세포 입장에선 이렇게 묻지 않을까요? 나는 막 대해도 되는 존재인가요?”
두려움
병원에는 9개월 아기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다녀갔다. 하루 평균 내원 환자수는 60여명, 상담전화는 70여건이며, 입원 환자 수는 30∼40여명이다.
이들은 매일 캡슐이나 탕약 형태로 조제된 넥시아를 복용한다. 넥시아 한 달 분은 370만 원 선. 성분에 따라 가격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싼 약이다.
두려움은 환자에게만 찾아오는게 아니다. 회진을 돌고 온 김경석(43) 한방종양내과 교수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환자가) 돌아가실 때 힘들어요. 마지막 순간엔 인간으로서의 무력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최성헌(26) 인턴은 진로를 바꿀 생각도 했다. “다른 센터에 가 있는 동안 아이 엄마였던 30대 후반의 환자 분이 결국 돌아가셨더라고요. 제가 이 일을 견뎌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됐어요.”
최 교수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와 불면증.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선 담대하기 힘들다.
병실을 둘러봤다. 낙상을 조심하라는 포스터의 마지막 문구가 거슬렸다.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암에 대처하는 자세
스티브 잡스는 2005년 8월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돼 이런 연설을 했다.
“‘곧 죽는다’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선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저는 1년 전 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고 싶어 하진 않죠···그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죠···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직관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세요.’
암을 비롯한 모든 불치병을 정복하는 건 인류의 숙원이다. 암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은 오늘도 계속 된다. 그러나 어쩌면 암을 피하기보다 암과 대면하는 편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리고 암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할 지를 준비해보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