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 對 1027명… 이스라엘 ‘샬리트 상병 구하기’

입력 2011-10-12 22:23

1 대 1027.

이스라엘의 ‘라이언 일병’ 길라드 샬리트(25) 상병이 마침내 풀려난다. 샬리트 상병 한 명과 팔레스타인인 1027명을 맞교환하는 조건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깊고도 오랜 분쟁을 상징해 온 샬리트 석방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양측 간 관계도 전환점을 맞을 전망이다.

◇극적인 석방 결정=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1일(현지시간) “하마스와의 어려운 협상 끝에 샬리트 상병이 며칠 내로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샬리트 상병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납치돼 5년 동안 억류돼 왔다.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인 칼레드 마샤알도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재소자 1027명 가운데 450명은 일주일 내로 풀려나고 나머지는 두 달 후에 석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는 팔레스타인 재소자들의 석방 소식을 축하하는 주민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테러범을 대거 석방했다는 일부 비난을 의식한 듯 중요한 수감자들은 이번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철천지 원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수십 명의 자살폭탄 테러범을 보내 수백 명을 죽였고,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2007년 집권한 이후 가자지역을 봉쇄했다. 2009년에는 양측 간 로켓포 공격이 이어졌다. 샬리트 상병이 납치된 후 15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샬리트가 석방되기까지=샬리트는 의무복무 중이던 2006년 6월 25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접경지대에서 하마스 대원의 기습공격을 받고 납치당했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폈지만 그를 구해내지 못했다. 독일과 이집트가 중재에 나섰으나 하마스는 협상 때마다 이스라엘 교도소에 갇힌 무장대원 1000여명을 풀어 달라고 요구했고 이스라엘은 이들이 대부분 테러를 자행한 중범죄인이라며 거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하마스는 샬리트가 납치된 지 정확히 1년 후, 처음으로 그의 육성 테이프를 공개했다. 2009년에는 그의 생존을 증명하는 비디오테이프를 건넸다. 이스라엘은 테이프의 대가로 팔레스타인 여성 재소자 20명을 석방했다.

가망이 없어보이던 석방 협상에 불을 지핀 건 아버지 노암 샬리트의 애끊는 부정(父情)이었다. 아버지는 2008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아들 석방 문제를 요청했다. 그의 가족은 지난해 6월 샬리트의 얼굴 사진이 인쇄된 흰색 티셔츠를 입고 이스라엘 국토횡단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200㎞를 걸어 예루살렘 총리 관저에 도착했고 이후 앞에서 천막시위를 벌여 왔다.

샬리트 상병 송환은 이스라엘에서 정치적 이슈로 등장해 내각에 큰 정치적 부담이 돼 왔다. 징병제가 시행되는 이스라엘에서 포로가 된 병사를 되찾아 오라는 국민적 여망을 정치인들이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샬리트는 이스라엘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귀환시켜야 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그리고 피랍된 지 정확히 1934일 만에 그가 자유의 몸이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