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굵은 음색 돋보이는 ‘남성 오페라’의 진수… 국립오페라단 ‘가면무도회’

입력 2011-10-12 18:10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테너의 오페라’라고 불린다. 소프라노를 맡은 여성 성악가의 음색과 연기가 주가 되는 여타 오페라들과는 달리 ‘남자들의 드라마’를 그린 이 오페라의 특성을 반영하는 별명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는 1792년 벌어진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프랑스 극작가 외젠 스크리브의 희곡이 원작이다. 왕과 충신, 충신의 아내 사이에 엇갈린 연애감정이 존재했다는 허구가 이야기의 밑그림. 주군과 아내 사이를 오해한 신하는 끝내 주군을 살해하지만 곧 후회하고 비통에 젖는다.

얼마 전 신임 단장을 맞은 국립오페라단이 이 ‘가면무도회’를 13∼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테너 정의근과 바리톤 고성현, 소프라노 임세경 등 쟁쟁한 국내 성악가들이 공들여 연습했다. 남성 성악가들의 선 굵은 음색은 이 오페라의 장중한 분위기에도 어울린다는 평가.

19세기 초연 당시 이 오페라는 정치극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탈리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 암살미수 사건이 일어난 뒤 이 작품에 대해 공연 금지명령을 내렸다. 결국 주인공인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는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로 바뀌어 공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의 초연 시기는 1859년이었지만 베르디가 처음 의도했던 ‘구스타프 암살’ 버전대로의 초연은 1935년에야 이뤄졌다. ‘총독’ 버전과 ‘국왕’ 버전 모두 현재까지 사랑받는 오페라 레퍼토리다.

장수동 연출의 이번 ‘가면무도회’는 ‘총독’과 ‘국왕’ 버전 중 어느 쪽일까. 장 연출은 굳이 어느 한쪽으로 분류되는 걸 피했다. 국왕과 신하가 등장하니 ‘국왕’ 버전인가 싶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총독’ 버전 대로다. 심플한 무대를 보면 시대나 공간적 배경을 짐작하기가 더더욱 어렵다.

장 연출은 12일 전화통화에서 “배경의 구체성을 피한 것은 ‘가면무도회’에 나온 사건이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관객들이 이 작품의 현재성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초연 당시에는 정치극으로 읽힌 오페라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겐 간결한 사랑 이야기로 읽히기 바란다는 게 장 연출의 설명이다.

8세 이상 관람가로 러닝타임은 160분. 티켓 가격은 1만∼15만원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