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길 걷다 만나는 에머랄드 빛 바다… 울릉도 내수전 옛길을 걷다
입력 2011-10-12 17:37
울릉도의 내수전 옛길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채색되기 시작했다.
내수전마을과 석포마을을 연결하는 내수전 옛길은 울릉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트레킹 코스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찾는 사람이 드문 호젓한 산길이었다. 두 마을 사이의 직선거리는 2.5㎞에 불과하지만 자동차로 가려면 무려 38㎞를 에둘러 달려야 한다. 지형이 워낙 험한 탓에 울릉도 일주도로 중 유일하게 미개통 구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수전 옛길은 일주도로가 개통되기 전 동북부와 동남부 주민들이 왕래하던 유일한 육로로 섬사람들의 고단함이 짙게 배어 있다. 저동항과 섬목선착장을 연결하는 철부선이 기상 악화로 발이 묶이면 북면 주민들은 지게에 어물을 잔뜩 지고 내수전 옛길을 걸었다. 그리고 저동항에서 식량이나 생필품을 구해 다시 지게에 지고 가파른 산길을 넘어야 했다.
내수전일출전망대 주차장은 4.4㎞에 이르는 내수전 옛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마가목과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룬 오르막을 20분쯤 오르면 해발 440m의 산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가 나온다. 저동항은 물론 죽도와 관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단풍으로 채색되기 시작한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로 이른 아침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과 불야성을 이루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야화가 환상적이다.
내수전 옛길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길섶은 양치류가 지천으로 자라고 단풍이 들기 시작한 아름드리 섬고로쇠나무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나리봉에서 부챗살처럼 퍼진 몇 줄기 가느다란 계곡엔 맑은 물이 흐르고, 길이 계곡에서 끊기면 어김없이 얼기설기 엮은 통나무다리가 길을 이어준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와 죽도는 한 폭의 그림.
내수전 주차장에서 1.3㎞ 거리에는 잠시 다리쉼을 하면서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로 목을 축이는 정매화골쉼터가 나온다. 정매화라는 주막집 여인의 외딴집이 있었다고 해서 정매화골로 불리는 이곳에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1981년까지 이곳에 살던 이효영씨 부부가 19년 동안 폭설과 악천후를 만나 곤경에 빠진 섬주민과 관광객 300여명을 구한 따뜻한 미담의 현장으로 지금은 쉼터가 조성돼 있다.
고비 등 양치식물이 빼곡한 원시림을 가로지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 와달리 가는 길로 내려서면 안 된다.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인 와달리는 주민들이 모두 떠나면서 길도 끊겨 위험하기 때문이다. 옛길은 삼거리를 지나면 동백나무 군락지를 관통해 울릉읍과 북면의 경계를 넘는다. 이어 제법 가파른 고개를 넘으면 평탄한 솔숲이 나오면서 자게골 입구 삼거리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게 된다.
흙길보다 걷는 맛은 떨어지지만 포장도로는 바다가 잘 보여 걷기에 좋다. 왼쪽으로는 송곳산으로 불리는 추산을 비롯해 울릉도의 북쪽 해안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내수전 옛길이 끝나는 석포마을은 외딴집들로 형성된 오지로 겨울철에는 폭설로 고립되기 일쑤. 하늘에서 내려온 용녀가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깊은 정만 남겨두고 떠났다는 전설로 인해 정들포라는 아름다운 지명을 갖고 있다.
트레킹을 좀 더 즐기고 싶으면 석포에서 지그재그 길을 걸어 석포전망대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석포전망대는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망루를 설치했을 정도로 조망이 좋은 곳으로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곳. 망망대해에서 정담을 나누는 관음도와 삼선암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20분쯤 더 걸으면 울릉도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북면 해안의 일주도로를 만나게 된다. 무시로 파도가 길을 넘는 섬목 앞바다에서는 관음도가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내년 5월 완공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섬목∼관음도 출렁다리는 울릉도의 새로운 명물.
바다 풍광에 반한 세 명의 선녀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삼선암과 에메랄드색 바다가 빚어내는 해질녘의 황홀한 풍경은 내수전 옛길의 단풍보다 더욱 화려하다.
울릉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