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집도 없이 사는 시인 목사와 화가 사모
입력 2011-10-06 10:16
[미션라이프] 교회가 있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그녀의 그림 속엔 가을이 한창이다. 들판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냇물도 가을을 닮아 붉게 물들어간다. 감나무엔 홍시가 익어가고 그 옆엔 까치가 입술을 다신다. 교회는 화폭 바깥 산자락에 숨어있다.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금평교회 이종남(67) 목사의 사모 정영자(64)씨가 17년 동안 그려온 ‘동해바다’와 ‘가을의 향연’ 등 유화 50여점을 싸들고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단풍은 아름다움을 남기고 가기 때문에 아름답지요. 낙엽은 죽으면서 조차 기쁨을 남기며 떨어지고요. 이 모든 것이 창조섭리가 아니고 뭐겠어요.”
정씨는 경희대 가정관리학과 출신이다. 어린 시절 엎드리면 그림을 그릴 정도로 좋아했지만 제대로 미술을 공부한 적이 없다. 남편이 199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여의도교회 재직시절 취미생활로 스케치북을 잡은 것은 인연이 됐다. 홍익대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비로는 세 아들을 키울 수 없어서 교인 몰래 수년 동안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할 때마다 정씨는 붓을 잡았다. 어린시절 고향 동네 풍경과 여행을 다니며 가슴 속에 간직한 장면들을 하나 둘 꺼내 화폭에 담았다. 마침내 2005년 그렇게 마음 조이며 그린 10여점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찾는 이 없는 나 홀로 전시회나 다름없었다.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물감을 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용기를 북돋워 준 분이 나타났다. 고신 총회장을 지낸 박종수 서울 대방동 남서울교회 원로목사다. 박 목사는 존경하는 고모부로 10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고 그의 그림 한 점을 가져갔다. 처음이자 마지막 고객이었다.
정씨는 3남매를 뒀다. 한동대를 나온 큰 아들 정훈(38)씨는 이화여대 약대를 나온 며느리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인근 고산지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둘째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막내는 서울의 한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다.
정씨 부부는 머잖아 은퇴목회자가 된다. 10년 단위로 새 교회를 찾아 다녔기 때문에 원로목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부부는 평생 내 집 한 칸 없이 살면서도 큰 걱정이 없다.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남편은 시를 쓰고 살면 되기 때문이다. 전시회는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02-730-5454).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