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재용] 스마트교육 발목 잡는 저작권제도

입력 2011-10-06 17:51


한때 로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건강한 육체일지라도 육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내장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고 로마를 빗대어 말했다. 스마트폰과 패드, 클라우드 컴퓨팅, N-스크린 등 잠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탄생하는 IT 용어들은 우리 사회의 육체적 성장 속도가 매우 빠름을 방증한다.

또한 이러닝(e-learning) 산업실태 조사는 2010년 이러닝 시장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섰으며, 국민 50% 정도가 이러닝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지난 6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표한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에서도 디지털 교과서 개발, 교육용 IPTV 활성화, IBT(Internet Based Test) 등 IT 기술을 활용한 교육을 예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작권 제도는 IT 기술이나 콘텐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 선생님들은 저작권 우려 때문에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고, 시·도 교육청은 우수한 문제은행을 개발해 놓고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콘텐츠 개발업체는 과다한 저작물 이용료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마저 있다. 교육 관련 저작권 제도의 문제로 연간 낭비되는 금액은 4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교육의 질 저하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 규모는 값으로 산정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현재 18대 국회에서는 공익 목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 공정이용(fair-use)에 관한 법안이 2009년 이후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돼 있으며 디지털 교과서의 전송 법안은 2011년에 개정안이 마련돼 국회 심사 중에 있다. 그러나 교육 관련 법안이 회기 내에 처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육 관련 저작권법 개정의 주요 이슈는 교과서의 전송, 학교 밖에서의 원격 수업, 저작물 공정 이용 허용 등이다. 교육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면 디지털 교과서에서의 저작물 전송이 가능하게 된다. 기존의 서책형 교과서 개념을 벗어난, 교사와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교과서가 탄생한다. 학생들은 교실 밖 어디에서든지 양질의 콘텐츠로 수업을 받을 수 있으며, 교육지원기관에서는 비영리 공익 목적으로 양질의 저작물을 이용한 새로운 저작물을 학생들에게 수준별로 다양하게 제공할 것이다.

저작권법 개선 외에 저작물 이용을 활성화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시급한 문제다. 자신의 저작물이 공교육을 위해 사용되기를 원하는 저작자들이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비영리 교육 목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 또한 많다. 이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교육에 많은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곧 새로운 저작물 생산을 촉진하는 환경 조성을 의미하며 저작권법의 목적인 문화 및 관련 산업의 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허재용 교육과학기술부 이러닝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