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의 野口] 정전, 헛스윙
입력 2011-09-29 17:51
18년 동안 2000경기 이상 출장한 이숭용 선수가 얼마 전 은퇴했고 내일 김재현 선수도 은퇴할 예정이다. 작년 이맘때 은퇴한 양준혁 선수를 비롯해 남다른 멘탈을 떨쳐주던 선수들이 하나 둘 그라운드를 떠나는 모습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그들은 찰진 박수를 받으며 떠나기에 충분하다. 야구란 물리력을 겨루는 스포츠라기보다 멘탈 승부에 가깝다고 본다. 몸도 중요하되 정신적 요인이 야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가르는 변수가 되는 것이다. 끝내주는 근성, 쫀득하고 질긴 의지, 과감한 배짱, 한계를 무시하는 인내력, 승부를 즐기는 기질, 그런 걸 두루 갖춘 선수가 야구 잘하더라는 얘기다.
이숭용 선수도 후배들에게 멘탈을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원하는 공이 있고 그것은 반드시 온다는 마음으로 타석에 서 있으면 그 공이 정말 온다는 주장이었다. 상대 투수 공을 어려워하기보다 반드시 칠 수 있다고 믿으면 칠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일 거다. 나는 요즘 그에게 한수 배우는 심정으로 이미지 트레이닝과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고 있기 때문인데, 반드시 새콤한 자리가 날 거라고 믿는 중이다. 하루 종일 소설만 생각해도 모자라지만 굶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일하면서 글도 쓸 수 있는 강력한 멘탈을 추구해 보려 한다.
김재현 선수는 고관절 괴사증이라는 무서운 질병을 앓았다. 그가 부활할 거라고 생각하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강력했다. 질병을 극복하고 그라운드에 복귀해 또 한번 맹활약해낼 만큼 그가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그런 정신은 프로야구 초창기 박철순 선수 레벨의 투혼이어서 나는 그의 은퇴식 때 가슴팍이 아련해질 것 같다. 양준혁 선수는 또 어떤가. 아웃되기 딱 좋은 땅볼을 치고도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모습으로, 아주 낮은 생존 확률도 무시하지 않겠다는 근성을 과시했다. 그는 그 ‘한 끗’ 차이로 3할 타자가 될 수 있다고 늘 설파한다. 그렇게 멘탈 좋은 야구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는 즐거움은 나에겐 삶을 멋지게 영위해낼 정신적 에너지가 되기도 하니까 야구를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얼마 전 정전사태로 경기 중에 야구장 불이 꺼졌다. 나는 낮에 신호등이 고장 나 꽉 막힌 도로에서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참는 최악의 위기를 멘탈로 극복하기도 했다. 그런 어이없는 사태 이면에는 관계자들의 멘탈 부재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상기후 때문에 수요와 공급에 대한 예측 판단에 실패했다지 않나, 전력거래소나 지경부나 한전이나 서로 소통이 안 되었다지 않나, 뭔가 안이한 헛스윙 냄새가 새록새록 나는 거다. 자신들이 전력 관리의 선수라는 인식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타자라면 어이없이 폭풍 삼진이나 당할 법한 멘탈로 중요한 공공의 일을 보고 있었다니. 선수 수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프로정신이 아쉽다. 그래서 정전사태의 책임자들이 사퇴하거나 문책성 경질되고 있는데 그들의 퇴장은 야구선수들의 은퇴와 달리 너무나 폼이 안 날 수밖에.
어쨌거나 은퇴하는 선수들에게 나는 언제까지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들을 보며 나도 무슨 일을 하든 멋진 멘탈을 부려야겠다고 다짐했으니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