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문준경’으로 불리는 섬 선교 어머니, 김은미 목사

입력 2011-09-28 15:44


[미션라이프] 지난해 4월 목사 안수를 받고 섬 선교에 매진한 지 1년이 지났다. 눈에 띄게 성도가 부흥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5월, 교회 설립 이래 처음으로 ‘임직식’을 열고 장로 한명, 명예권사 2명, 권사 3명을 세웠다. 외지에서 200여명의 ‘손님’이 섬을 방문해 축하해줬다. 섬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이다.

남편에 이어 전남 신안군 증도면 소악성결교회를 담임하는 김은미 목사 얘기다. 26~28일 강원도 평창 한화피닉스파크에서 열린 ‘2011 목회자 전도대회’에 참석한 김 목사는 “작고 조용한 섬이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근황을 전했다.

임직식 같은 기쁜 날도 있었지만 이단의 공격도 받았다. ‘선한 이웃’으로 섬에 들어온 이단은 주민들을 현혹시켰다. “도시와 달리 섬은 외지인이 오면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대해줘요. 그런 마음을 이용한 것이지요. 결국 저한테 이단인 게 들통났습니다. 그들에 배신 당한 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 목사는 ‘제2의 문준경’으로 불리며 섬 선교 어머니로 살고 있다. 한국교회 첫 여성 순교자인 문준경 전도사와 같은 고향인 신안군 암태면에서 1961년 태어났다.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문 전도사에 관한 신앙의 열정을 전해들어 그에게 문 전도사는 친근한 이모 같다.

김 목사는 2002년 남편과 함께 소악성결교회에 부임하면서 섬 선교 비전을 갖게 됐다. 당시 전도사의 신분으로 남편은 섬에 들어왔다. 김 목사 역시 그런 남편을 도와 열심히 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때만 해도 섬과 섬 사이에 길이 나지 않아 갯벌을 걸어 심방을 다녔다.

그렇게 2년 정도 흘렀을까. 남편이 급성림프백혈로 1년여 투병을 하다 먼저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김 목사는 남편에 대해 “열정적인 하나님의 종이었다”고 회상했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도 몸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인도할 정도였다.

그런 남편을 먼저 보내고 김 목사는 갈등했다. 어린 두 자녀를 생각하면 육지로 나가야 하는 상황. 그러나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남편의 비전을 버릴 수 없었다. 그때 김 목사를 붙잡은 이가 바로 소악성결교회 성도들이다. 김 목사가 신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마무리하고 목사안수를 받을 때까지 교회 성도들은 그를 담임으로 섬기며 기다렸다.

김 목사는 세 개의 섬 마을을 대상으로 목회하고 있다. 이들 섬에는 모두 12가구 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15명 정도가 교회에 나온다. 1982년 7월 23일 개척예배를 드린 소악성결교회는 이들 섬에 있는 유일한 영의 안식처다.

“최근 한 가구가 새로 이사를 왔는데, 전도할 분들이 생겼습니다(웃음). 어떤 분은 제가 여성이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육지로 나오라고 하세요. 그러나 이곳이 제 고향이고, 주민들이 가족입니다. 섬 전체를 복음화하는 그 날까지 말씀과 기도, 전도를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평창=글·사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