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줘” 시한부 삶 정리하는 아버지의 여정… 영화 ‘비우티풀’ 10월 13일 개봉
입력 2011-09-27 21:48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42)에게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비우티풀(BIUTIFUL)’이 다음 달 13일 국내 개봉된다.
129년째 건축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멀리서 배경으로 살짝 비치는 스페인의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 바르셀로나 뒷골목.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조울증으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아내 마람브라(마리셀 알바레스)와 헤어져 어린 딸 안나, 아들 마테오와 살고 있다. 생활은 애들 간식 사 주기도 벅차고, 집세 걱정을 할 정도로 궁핍하다.
그는 중국인 밀입국자들을 가내공장이나 건설현장 등에 소개해주거나 경찰에 뇌물을 먹여 불법이민자들의 불법노점을 보호해 주고 수고비를 챙기는 등의 일을 한다. 모두 불법이지만 그에겐 달리 생계를 꾸려갈 방법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그는 전립선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고, 몇 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죽은 자와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그는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를 본다. 죽음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그에게는 돌봐야 할,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그가 의지할 곳은 어디인가.
‘비우티풀’은 한 남자가 자신의 죽음 뒤 남겨질 어린 자녀들을 위해 삶을 정리해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존재와 사라짐 앞에서 고뇌하는 욱스발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냈지만 바르셀로나란 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은 냉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바벨’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2006)을 수상했던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연출했다. ‘비포 나잇 폴스’와 ‘씨 인사이드’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차지하고, 아카데미영화제 남우조연상(‘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을 수상한 바르뎀의 연기는 관객들을 압도한다. 영화 데뷔작인데도 깨어진 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조울증 여성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아르헨티나의 안무가 겸 연극인 마리셀 알바레스도 새로운 발견이다.
상영시간 148분,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 영화의 제목 ‘비우티풀’(‘Beautiful’을 안나가 틀리게 적은 글에서 따왔다)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체적인 분위기는 잿빛이다. 그런데도 제목을 이렇게 단 것은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고, 그들에게 기억될 수 있다면 그 삶은 아름답다’는 역설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빠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딸 안나를 욱스발이 부둥켜안고 “아빠 기억해 줘, 잊으면 안 돼, 안나 아빠 잊으면 안 돼. 우리 딸”이라고 말하던 장면, 그 목소리가 귓가를 계속 맴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