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철 정림건축 명예회장, 그는 갔지만...

입력 2011-09-27 14:39


[미션라이프] “그는 직원을 배려하는 건축가, 존경할 만한 건축가, 진정한 크리스천 건축가였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회사 정림건축 설립자인 고 김정철 명예회장에게 띄운 이필훈 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의 추도문이다. 27일 오전 11시 서울 연건동 정림건축 사무실에서 열린 김 명예회장 1주기 추모식엔 건축계 거목이었던 고인에 대한 후배들의 그리움과 고마움이 짙게 묻어났다.

이날 추모식을 주최한 곳은 정림건축, 정림건축문화재단, 한빛누리재단이다. 정림건축은 고인이 설립하고 이끌어왔던 곳이다. 고인이 보유했던 회사 주식 10%(약 60억원)는 유언에 따라 정림건축 임직원들에게 모두 무상 분배됐다. 정림건축 내에서는 현재 우리사주제도가 정착돼 있다.

정림건축문화재단 역시 고인의 뜻을 따라 올해 설립됐다. 건축계 후진 양성을 위한 것이다. 이 역시 고인이 기증한 주식 10% 때문에 가능했다. 2005년엔 고인의 주식 20%를 기부해 선교와 민족화해, 교육사업을 위한 한빛누리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고인의 가족대표인 김형국 나들목교회 목사는 “우리사주제도와 정림건축문화재단은 정림건축의 정신을 건축계 전반에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인은 1992년 발간한 작품집 ‘빛과 사랑의 건축’ 서문에서 신앙인이자 건축인으로서 현대 건축을 다음과 같이 성찰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이 오히려 인간의 심성을 메마르게 하지는 않는지, 자연을 생각하고 조화롭게 앉힌 조형이 오히려 환경을 어지럽히고 있지는 않는지….”

인간과 환경에 대한 고인의 이 같은 반성은 그가 설계한 건축물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전주 예닮교회, 전주 서문교회, 후암동장로교회, 한국교회100주년기념 순교자기념관, 청와대 본관·춘추관, 서울대 본관, 인천국제공항,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월드컵경기장 등이 그것이다.

고인은 건축과 기부뿐만 아니라 경영에서도 모범이 됐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철저한 책임경영을 실천했다. 비 건축인인 이충노 사장을 4년 전 최고운영책임자로 영입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소유와 경영 분리, 젊고 유능한 인재의 조기 발굴을 통한 세대 교체, 성과에 대한 공정한 배분을 통한 공동체의식 강화가 평소 고인이 강조했던 ‘3대 경영지침’이다.

한빛누리재단 황병구 본부장은 “고인은 평생 복음의 빚진 자로 자신보다 공동체를 생각하셨던 분”이라며 “밝고 따뜻한 소식을 접하기 힘든 한국 교회에 그는 여전히 빛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1932년 평양 태생인 고인은 대광고·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정림건축을 설립했다. 그는 개인 중심의 건축설계 분야에 조직과 협업을 통한 품질경영을 도입해 국내 건축기술의 표준화와 선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27일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