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승주] 예멘의 봄
입력 2011-09-23 17:45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예멘은 아랍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고작 1060달러(2009년 기준). 국민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굶주림에 허덕인다.
남북이 합쳐진 지 20년이 지났지만 정서적 통합은 아직 멀었고,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는 으르렁거리며 대립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남쪽 아덴만에는 소말리아 해적이 자주 출몰해 혼란을 일으킨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33년째 집권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그는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42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장기집권 중이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군인이 된 살레는 유력 부족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부족 지도자가 됐다.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군부를 장악했고, 1978년 쿠데타를 통해 북예멘을 장악했다. 전쟁을 통해 남예멘을 흡수한 후 1990년 통일 예멘의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
30년 넘게 권좌에 있지만 그것도 부족했던 그는 대통령 임기를 종신으로 못 박는 개헌을 추진했다. 아들에게 세습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오랜 내전과 빈곤에 시달려온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정부는 비무장 시위대에 로켓포까지 쏘며 강경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연일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분노한 시위대가 최정예 정부군 기지까지 장악했다. 자칫 내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예멘 국민들의 시위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한 노동자의 분신에서 촉발된 튀니지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와 리비아를 거쳐 예멘에도 상륙한 것이다. 예멘 근·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지배층을 향한 성난 저항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아래로부터, 내부에서 일어난 예멘 혁명은 미국과 이웃 아랍국의 지원까지 받고 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예멘 국민들의 요구, 도도하게 흐르는 민주주의의 물결을 어떤 독재자가 막을 수 있을까. 살레 대통령은 보았을 것이다. 쫓겨난 후 철창에 갇혀 재판을 받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과 어딘가에 숨어 두려움에 떨고 있을 카다피의 말로를. 살레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권력을 국민들에게 넘겨주고 그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아라비아 반도의 최빈국 예멘에도 봄은 와야 하지 않겠나.
한승주 차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