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성들, 美하원 청문회서 증언… “성혜림 안다고 수용소 보내… 9년간 짐승같은 생활”
입력 2011-09-21 18:57
‘새벽 3시30분 기상, 해질 때까지 강제 노역, 저녁 먹고 늦은 밤까지 사상투쟁회의’
김영순(74·여)씨는 9년을 그렇게 살았다. 악명 높은 북한의 요덕정치수용소에서다. 그가 수용소로 끌려간 이유는 단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실상 첫 부인이었던 성혜림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 민주화위원장 여성회장을 지낸 김씨는 20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의 아프리카·국제보건·인권 소위가 북한 인권을 주제로 개최한 청문회에서 수용소 생활을 이렇게 증언했다.
김씨는 성혜림과 고교와 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다. 어느 날 그로부터 ‘5호댁’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 5호댁은 김정일의 특별저택이다. 그곳을 다녀온 뒤 1969년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는 “성혜림 또는 성혜림과 김정일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사람, 그런 사실을 남에게 얘기한 사람들이 끌려와 있었다”며 “처형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갖가지 ‘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끌려왔다. ‘김일성의 목에 혹이 있다고 말한 죄’ ‘김일성 초상화를 훼손한 죄’ ‘김정일의 사생활을 말한 죄’ 등이 그것이다.
김씨는 1970년 8월 1일부터 두 달 동안 312호라고 불리는 보위부 안가로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성혜림과 관련된 무엇이라도 불어야 했다. 결국 자신의 부모와 가족까지 모두 수용소에 수감됐다.
김씨의 세 아들과 딸, 부모는 수용소에서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거적때기로 말아 밭에 버려야 했다. 다른 수용소로 간 남편의 생사는 모른다. 그는 오빠가 인민군 사단장 대리를 지내는 등 한때 유복하게 지냈다고 한다.
김씨는 2001년 2월 1일 탈북해 2003년 11월 한국에 입국했다. 증언을 마치면서 그는 “지옥 같은 땅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북한 형제들을 구해 달라. 정치범 수용소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울먹였다.
함께 증언한 김혜숙(50·여)씨는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 28년 동안 수용돼 있었다. 그는 자신이 탈북해 중국에 숨어 있을 때 4차례나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