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저축은행 관련 의사록 살펴보니… 위원들 “원안대로” 거수기 역할

입력 2011-09-21 21:58


지난 수년간 저축은행 업계의 부실이 커지는 동안 금융위원회가 이상 신호를 지속적으로 감지했음에도 수수방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 정례 및 임시 회의마다 위원들은 저축은행들의 무분별한 대형화와 부실 은폐에 우려를 제기하면서도 원안대로 처리만 반복했다.

이 같은 사실은 금융위원회가 한나라당 권택기 의원에게 제출한 ‘2008년 이후 각 업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 관련 의사록’을 국민일보가 21일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2009년 3월 금융위 회의에선 토마토저축은행의 부산 소재 양풍상호저축은행(현 토마토2저축은행) 주식 취득 승인건이 다뤄졌다.

한 위원이 “일부 저축은행들이 지방은행보다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말하자 “이런 대형 저축은행은 은행 수준의 지도·감독이 필요하다” “저축은행 산업이 양극화된다” 등 우려가 잇따라 제기됐다. 그러나 말뿐이었고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토마토는 4400억원의 빚만 남긴 채 지난 18일 영업정지됐고 인수된 토마토2는 예금 인출 위기를 겪고 있다.

2008년 11월 금융위에는 부산·부산2저축은행의 대전·고려저축은행 주식 취득안이 올라왔다. 한 위원은 “부산저축은행이 두 개의 저축은행을 인수할 여력이 충분하냐”고 질문하자 당시 중소서민금융과장은 “투자여력, 자기자본이 충분하다”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도 양호하고 전담조직도 잘 돼 있다”고 적극 변호했다.

이에 위원들은 “인수합병 후 부실화되지 않도록 감독하라”고 했을 뿐 역시 원안대로 의결했다. 당시 부산저축은행은 이미 PF대출이 50%에 육박했으며 나중에 문제가 된 캄보디아, 전남 신안군 등 PF 대출건들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2008년 6월에도 한 저축은행의 타 저축은행 주식 취득 건에 “규모가 커질수록 위험요인이 커지니 감독 철저히 하라”고만 했을 뿐 원안대로 의결됐다.

또 ‘2005년 이후 부실 금융기관 지정 당시 의사록’에 따르면 에이스저축은행 사례와 같이 의도적인 부실 은폐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급락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금융위는 속수무책이었다. BIS비율이 -20%대인 업체들에 대해 위원들이 “이렇게 되도록 조치를 안 했느냐”고 묻자 담당자가 “의도적 조작·은폐 때문”이라고 답했다.

권 의원은 “현재의 금융감독 체계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라며 “예금보험공사 등과 함께 건전성을 상시 감독하는 등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합의제 의사결정기구인 금융위는 금융위원장(장관), 부위원장(차관), 상임위원 2인, 당연직 위원인 기획재정부 차관, 한국은행 부총재, 예금보험공사 사장, 금융감독원장, 그리고 민간 비상임위원 1인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