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앓는 아내를 12년간 한결같이 돌봐 17년전 뇌출혈 노모 결혼도 미루고 봉양

입력 2011-09-20 19:14


경기도 안산시 일동에 사는 이수길(68)씨는 지난 12년간 치매를 앓은 아내(69)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 무역업을 하던 이씨는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회사 문을 닫았고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씨는 20일 “당시 아내가 마음고생이 아주 심했다. 설상가상 1년쯤 뒤부터 아내의 말과 행동이 갑자기 이상해졌다”고 회상했다.

설거지 한 그릇을 냉장고에 넣거나 약속 장소를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씨는 아내 나이가 50대 중반이어서 치매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는 1년 뒤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느라 세세히 챙겨 주지 못해 후회가 컸어요. 이제부터 아내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죠.” 이씨는 24시간 아내의 수족이 됐다. 아내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악화됐다. 이씨는 “말없이 집을 나가 실종신고만 6차례 했는데, 다시 만나고도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동반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혼자 살 수 없는 아내이기에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치매가족협회, 치매학회 등 관련단체와 치매인식 개선용 DVD를 제작하고 방송에 출연하며 치매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17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75)를 모시는 이은정(42·여·서울 개포동)씨는 아직 미혼이다. 역시 뇌출혈로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치매에 걸리자 목욕, 이동, 배변 수발을 도맡아 하느라 혼기를 놓쳤다. 도자기 전시 일을 하는 이씨는 지난달 초 해외출장 때문에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맡겼다가 혼이 났다. 어머니의 대퇴부가 골절돼 보름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이씨는 “막상 다른 곳에 모실 수 없어 그랬는데, 어머니를 힘들 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씨는 “어머니를 마지막까지 지켜드릴 수 있다면 결혼은 상관 않는다”며 웃었다.

이처럼 치매 환자를 극진히 돌보는 배우자와 자녀 등이 제4회 치매 극복의 날(21일)을 맞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복지부는 이날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기념식을 열고 이수길 이은정 김종렬(67) 이기인(65)씨 등 치매가족 4명을 포함해 치매 요양보호사, 치매 치료 의사, 국가치매예방관리사업 담당 공무원 등 65명에게 장관상을 수여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