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체장에 듣는다-②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대기업 경제성장에 큰 역할… 격려해줬으면”
입력 2011-09-20 17:53
손경식(72)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이 열심히 뛰어야 경제를 선도할 수 있다”면서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대기업을 조금만 격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근 화두인 동반성장에 대해선 “기업, 업종별로 사정이 다른 만큼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반기업 정서에 대한 우려를 많이 했다. 과거에 비해 대기업들도 공정하고 투명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국민들이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줄 필요가 있다는 당부도 했다.
만난 사람=신종수 산업부장
-대기업 입장에선 정부가 공생과 동반성장을 너무 강요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동반성장이 기업에 너무 큰 부담을 주거나 효율성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 지속되기도 어렵고 기업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동반성장은 자율에 맡겨야 한다. 바람직한 동반성장 모델은 업종별로 다르고 회사 사정에 따라서도 다르다. 규격화해서 법으로 규제하는 건 무리가 있다. 동반성장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이 경제적 부를 독점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기업이 경제적 부를 독점한다는 부분은 오해가 있다. 그동안 몇 가지 업종이 경기가 좋아 매출도 늘고 이익도 많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대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업종에 따라 고전하는 곳도 많다. 또 올해 많이 벌었다고 해서 내년에도 괜찮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IT 산업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우리 IT 업계가 하드웨어 중심으로 잘해왔지만 세계 IT 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입지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 대기업이 잘 되면 협력하는 중소기업에 혜택이 가고, 여건이 안 좋은 업종의 경우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이 고생하게 돼 있다. 둘은 공생 관계이지 어느 한쪽만 잘 될 수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대한 정치권이나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1960∼70년대 경제개발을 추진하던 시절 정부는 정책적으로 대기업에 많은 자원을 배분했다. 이후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기업들의 경영능력, 투명성 문제 등이 부각됐다. 이런 상황들이 누적되면서 대기업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방향으로 가면 반기업 정서도 점점 해소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이 국가 경제에 기여한 부분이 많다. 대기업이 열심히 뛰어야 경제를 선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대기업을 아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외식업종 진출에 대한 비판이 특히 많은 것 같다. 물론 대기업 외식 업체가 들어서면서 동네의 작은 식당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로 운영하면서 퇴직하신 분들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측면도 있다. 지역에서 관련 업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점포 이름과 인테리어만 바꿔 계속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2006년에 폐지됐다. 관련 규제를 없애고 진입 제한을 풀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법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관계에서 개선할 부분이 많다.
“대기업이 갑의 입장에서 중소기업을 가볍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사례가 분명히 있다. 구두로 발주하고 ‘내가 언제 발주했느냐’는 식으로 발뺌한다거나 덮어놓고 단가 낮추라고 요구하는 건 온당치 않다. 대·중소기업 간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최근 정부가 감세정책을 철회하는 내용의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법인세 문제가 기대했던 대로 잘 안 된 것 같다. 정책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법인세는 예정대로 인하돼야 한다. 법인세 감세는 기업의 세 부담을 줄이고 투자와 고용을 늘려 중장기적으로 성장을 가속화해 그 과실을 국민 전체가 나눠 갖자는 취지다.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해외 자본의 국내 투자를 유인하는 효과도 있다. 감세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세율 인하를 통해 기업의 활력이 살아나고 세원을 확대하면 세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본다. 과거 법인세율 인하 후 일정한 시차를 두고 투자가 증가한 것을 보면 장기적으로 감세에 따른 투자증대 효과는 분명히 있다. 앞으로 국회에서 논의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요즘 대기업 취업시즌인데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청년실업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력 수급의 불일치를 해소해야 한다.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는 많이 늘었지만 산업현상에선 적정한 인재를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대한상의는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 인력을 키우기 위해 부산, 인천 등 8개 지역에 인력개발원을 운영하고 있다. 전액 국비인데다 지난 17년간 100%에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하다보니 최근에는 대학 재학생부터 졸업생까지 교육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도 인력개발원을 활용해 청년층의 취업 촉진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대내외적인 경제 상황이 어렵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서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무한경쟁 시대인 만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좁게는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문제이기도 하다.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신성장동력을 찾고 육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스포츠 비즈니스나 물류사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IT 기술을 활용한 사회 인프라 확충 등도 고민하고 있다. 사회 및 행정 제도 역시 국민의 편의와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추진해온 사업이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점검할 생각이다. 이행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 국민이나 기업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손경식 회장은
손경식 회장은 대외 직함만 70여개에 달한다. 대한상의 회장 외에도 CJ그룹 대표이사 회장, 세제발전심의위원장, FTA민간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경위) 위원장에 취임했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손 회장의 누나(손복남 CJ 고문)가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씨와 결혼하면서 양가는 사돈을 맺었다. CJ그룹을 함께 이끌고 있는 이재현 회장이 손 회장의 조카다.
경기고(1957년)를 수료하고 서울대 법학과(61년)를 졸업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대학원에서 MBA를 취득(68년)했다. 61년 한일은행 근무를 시작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77년 38세의 나이로 삼성화재 사장에 오른 뒤 94년 CJ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2008년 대한상의 내에 ‘민관합동 규제개혁추진단’을 꾸려 기업 현장의 애로사항을 발굴하고 해소하는 데 집중해왔다. 현재까지 총 325회 현장을 방문해 2354건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이중 1494건(63.5%)를 개선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손 회장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가업상속 공제제도 개선안이 포함돼 장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정리=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