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두려운 행복
입력 2011-09-19 17:45
추석 주간에 언약도 유적지인 스코틀랜드 지역을 다녀왔다. 그곳에는 순결한 교회론을 지키기 위한 언약도들의 피와 땀, 눈물이 서려 있다. 당시 영국 기독교는 국왕이 교회를 통치하고 지배했다. 국왕이 실제적으로 교회의 수장이 되고 머리로 존재했다. 그러한 때 언약도들은 국왕에게 반기를 들고 저항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리는 국왕이 아니라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왕이요 통치자임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레이 프라이어스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서약을 맺었다.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고 스코틀랜드를 하나님께 바친다고 말이다. 그러자 국왕은 언약도들을 지붕 없는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감옥은 지붕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언약도들은 도망가지 않고 여름에는 더위와 목마름에 시달려 죽고 겨울에는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동상이 걸려 죽었다. 그러다가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은 마켓 광장으로 끌려와 국왕이 보는 앞에서 목베임을 당했다. 그들이 온갖 두려움을 맞서며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주인과 왕으로 모시는 신앙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개혁교회와 장로교회가 탄생된 것이다.
그런데 언약도 유적지를 찾아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반면에 그 유적지 앞에 보비라고 하는 개의 동상과 기념비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아, 왜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 영광스러웠던 교회의 영향력이 쇠퇴하였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개혁교회도 점차 안정되면서 서로 기득권 싸움을 벌이다 분열하고 힘을 잃어버렸다.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신학적인 문제였지만 내적으로는 누가 더 욕망의 바벨탑을 높이 쌓느냐 하는 것이었다.
언약도 유적지에서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니 더 가슴이 저리고 아파왔다. 우리도 그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 주부터 각 교단의 총회가 시작됐다. 개인의 이해와 기득권을 앞세우며 불필요한 소모전을 해서는 안 된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왕으로 모시고 섬기며 하나 되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도 계속해서 서로 다투고 분열하면 언젠가 역사의 흙무더기에 묻히는 유물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우리는 주님만을 왕으로 모시는 교회론을 지켜야 한다. 우리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높여야 한다. 두려운 행복, 두려운 사랑을 가슴에 품고 말이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먼지 쌓인 고서가 되지 않고 역사의 서판에 불멸의 기록으로 새겨질 수 있으리니.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