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잇몸 주변 감염이 치명상 만든다

입력 2011-09-18 17:41


#1. 46세 남자 환자 박모 씨. 우측 안면 부위부터 시작해 목까지 붓고 아프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았다. 매일 소주 2∼3병을 마시는 만성 알코올중독 상태에서, 3주 전부터 오른 쪽 볼이 붓고 아팠는데도 특별한 처치를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박씨는 경부CT 검사결과 오른 쪽 아랫니 아래 부위에 고름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 81세 남자 환자 김모 씨. 박씨와 같은 이유로 병원을 방문했다. 다만 당뇨와 고혈압, 뇌졸중 병력을 갖고 있는 것이 박씨와 달랐다. 역시 경부 CT 검사결과, 우측 볼 부위부터 턱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부위에 농양(고름)이 관찰돼 응급 배농 수술 및 상처 세척 치료를 받았다.

분당서울대병원 안순현(이비인후과), 김홍빈(감염내과) 교수팀이 최근 대한두경부외과학회에 보고한 ‘괴사성 근막염’ 환자 사례들이다. 괴사성 근막염은 총상을 입은 후 국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회생한 삼호 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괴롭힌 세균감염 질환이다.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환절기에 접어들면서 치사율이 30∼40%에 이르는 괴사성 근막염 주의보가 발령됐다. 안 교수는 19일, “사소한 치성(齒性)감염이 괴사성 근막염으로 발전, 생명이 위독해져 응급실을 찾는 노약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환절기 건강관리에 주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치성감염이란 치아우식증(충치)이나 만성 치주염(풍치)같이 세균감염으로 치아 및 잇몸 질환이 생겨 염증이나 고름을 형성하는 경우를 말한다.

괴사성 근막염은 당뇨병, 간 질환, 암, 신부전, 알코올중독 등과 같이 만성질환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와 노인을 비롯해, 크고 작은 외상을 입은 뒤 2차 세균감염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외상에 의해 주로 감염되는 부위는 팔, 다리와 사타구니이다.

그러나 안 교수는 “소위 국민병으로 불리는 치아우식증이나 만성 치주염은 물론 환절기에 흔한 감기를 앓은 뒤 발생하는 경우도 10%에 달할 정도로 적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이렇듯 사소한 염증이나 상처가 괴사성 근막염으로 발전하면 환부가 압통과 함께 부으면서 급속히 피부 조직을 괴사시키기 때문에 즉시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시일을 끌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균이 혈액을 타고 내부 장기에 들어가 패혈증을 일으키게 되고, 이로 인해 생명이 위험해진다. 수술 시기를 놓친 괴사성 근막염 환자 중 62.5%, 배농 및 괴사 조직 절제 수술이 가능했던 환자의 14.3%가 사망하고, 치료 중 숨지는 경우도 31.8%에 달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

환절기에 흔한 치성감염 또는 목감기에 의한 괴사성 근막염은 일반적으로 발열과 함께 목이 붓고 피부가 붉어지는 증상으로 시작됐다가 며칠 후 피부색이 검붉게 변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이 무렵 경부 CT검사를 실시하면 목 안쪽의 근막과 피하조직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 보인다.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피부 상처를 통한 2차 세균감염으로 발생하고 발병 초기 증상도 비슷한 봉와직염(cellulitis)으로 오인하기 쉽다는 점. 그러나 봉와직염은 염증이 피하지방층까지만 파급되는 반면 괴사성 근막염은 염증이 더 깊이 침투, 근막조직까지 괴사시킨다.

안 교수는 “붕와직염은 항생제를 투약하는 것으로 대개 치료가 가능하지만 괴사성 근막염은 항생제 치료만으론 해결이 안돼 반드시 수술을 병행해야 하는 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