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 10년, 평화는 없었다-아물지 않은 상처] 맨해튼 곳곳 ‘Never Forget’

입력 2011-09-06 22:36


9·11 테러 이후 10년. 세계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는 9·11 테러는 깊은 상처만 남기고 승자도 없는, 그런 음울한 세계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돼가고 있다. 미국 본토를 성공적으로 공격한 알 카에다는 지금 몰락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5월)에 이어 지난달 22일 알 카에다 2인자 아티야 아브드 알 라만도 피살됐다. 알카에다 근거지인 파키스탄 내 조직망은 거의 와해됐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미국 공격은 역설적으로 이슬람권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과 서방의 강경 정책으로 이슬람 세계는 강온으로 나뉘면서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겪고 있다. ‘미국은 9·11에 과잉 반응하고 있는가’ ‘두 개의 전쟁 목표는 무엇인가.’ 9·11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 내부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자문이다.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NEVER FORGET.’(절대로 잊지 않는다)

‘MEMORIAL POOL’(9·11 기념 연못)

이제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를 상징하는 단어들이 됐다.

지난 3일 오후, 뉴욕 리버티 스트리트의 WTC(world trade center) 방문객센터. 9·11테러 10주년을 앞두고 바로 옆의 그라운드 제로를 구경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1년 가까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데이비드 라우닝(55)씨. 그는 2001년 9·11 당시 뉴욕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참상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꼭 10년이 지나갔다’고 말을 걸자, 무덤덤하게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항상 ‘never forget’이라고 말해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테러리스트의 공격도, 희생된 사람도, 그들을 구하려다 또 희생된 소방관들도 잊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라우닝씨는 오는 11일 개관 예정인 9·11 추모공원 옆의 소방서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당시 순직한 소방관 등 344명의 이름과 함께 ‘우리는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는 글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never forget’ 표현은 9·11 이후 새로 지어진 건물이나 맨해튼 이곳저곳의 벽에 다양한 형태로 걸려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추모 공원 안에는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 2개의 인공폭포와 2개의 연못(NORTH MEMORIAL POOL, SOUTH MEMORIAL POOL)이 만들어져 있다. 쌍둥이 빌딩을 상징하는 폭포와 연못으로, 바로 그것들이 서 있던 자리다. 11일 10주년 기념식과 함께 유족에게 가장 먼저 공개될 예정이다. 추모공원에 들어서는 유족들은 10년 만에 희생된 가족과 친지들을 만난다. 폭포를 둘러싸고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난간이 있기 때문이다. 기념식 때는 이들의 이름이 한 명씩, 한 명씩 불려진다. 한국인 희생자 13명도 포함돼 있다.

이 추모공원을 6개의 새로 짓는 빌딩이 둘러싸고 있다. 현재 52층짜리 7 WTC만 완공돼 있다. 1∼5 WTC는 내년 말 완공되는 1 WTC(104층)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끔찍한 기억을 지워내려는 듯 뉴욕시는 6이라는 숫자는 일부러 뺐다. 미국인들은 6을 불길한 숫자로 생각한다. 아직도 그 참상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지난달 23일 미국 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은 뉴욕 시민들에게 잠시였지만 테러 공포를 새삼 느끼게 했다. 그라운드 제로 바로 옆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케빈 리만(20)씨는 “건물이 흔들렸을 때 바로 뛰쳐나갔다.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건물에 있었던 내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공포는 늘 그들 옆에 있는 듯했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가끔씩 특별한 관광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9·11 테러 생존자나 유족, 또는 특별한 9·11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자원봉사 안내를 하는 것이다. 이들이 그라운드 제로를 안내하며 자신의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로즈 엘렌(51)씨. 그녀의 남편 케빈 엘렌은 뉴욕 소방대원이었다. 케빈은 9·11 당시 남쪽 쌍둥이 빌딩에서 건물에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려다 순직했다. 엘렌씨도 가끔 관광 안내를 한다.

“남편과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자원봉사 가이드를 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케빈이 친절하고 용감한 소방대원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는 인생을 남을 돕는 데 사용했고, 그런 가치를 두 아들에게 남겼다.” 엘렌씨는 이렇게 9·11을 극복하고 있었다.

뉴욕은 여전히 활기차다. 꼭 10년 전, 그 일을 잊은 듯하다. 월스트리트 주변의 상권은 대부분 회복됐다. 관광객은 넘쳐나고, 도로의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최소한 외견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적절치 않은 곳에 차량이 운전자 없이 주차돼 있거나, 사람이 붐비는 곳에 주인 없는 가방이 놓여져 있으면 바로 누군가가 911에 신고한다. 일상적으로 공공건물에 들어설 때도 검색을 받기위해 길게 줄을 서야 한다. 그게 9·11 이후 미국인들의 생활이다. 9·11의 공포와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은 것이다.

뉴욕=글·사진 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