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희옥] 민생·민주의 중국
입력 2011-09-06 17:59
지난달 말 베이징대에서 ‘민생과 민주’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학문적으로 풀어보자는 취지였다. 회의 결과 민주는 민생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고 민생 문제를 통해 민주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흡인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민생과 민주만이 공산당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전적 의미에서 민생은 ‘인민의 생계’를 의미한다. 삼민주의를 주창했던 쑨원은 ‘소셜리즘(Socialism)’을 애초에 민생주의로 번역하기도 했다. 후진타오 시대에 이르러 ‘민생이 최대의 정치’라는 말이 시중에 회자됐고, 정부도 민생지수를 개발해 계량화하고 있다.
새로운 중국모델론 가능하다
오늘날 중국은 무릇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以人爲本)’이며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중국 학자들이 공무원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질타한 것도 현실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이러한 치열한 화두는 내년에 개최될 18차 전국인민대표대회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은 서구적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부족한 국가다. 그러나 이미 ‘민주는 좋은 것’이라고 선언했고 ‘민주’를 말하는 것도 더 이상 정치적 금기가 아니다. 후진타오 주석도 지난해 홍콩에서 ‘법에 따른 민주적 선거와 민주적 의사결정, 민주정치, 국민의 알권리·표현·참여·정치권리를 보장해 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실제로 연간 20만건 이상 발생하는 집단시위와 같이 밑으로부터의 요구를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국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해법을 찾았고 이 회의에 참석한 학자들도 당내민주, 법치, 협상민주, 점진민주, 사회주의 다당제, 자유주의 등 다양한 출구전략을 내놓았다.
물론 중국이 다당제나 삼권분립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이 적고, 서구 민주주의를 ‘어머니의 사랑과 애플파이’와 같다고 믿지도 않으며, 민주도 단순히 주인을 선출하는 선주(選主)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정당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은 외부의 관찰보다는 훨씬 진지하다.
문명충돌론을 역설한 헌팅턴은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 이상이 되면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의 압력을 받고 8000달러 이상의 모든 국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예외 없이 시행한다고 했다. 중국도 2010년 말 이미 1인당 국민소득이 4300달러를 넘어섰고 조만간 50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共進의 논리’로 상호협력을
여기서 중국은 ‘중진국 증후군’을 극복하고 중국예외주의나 중국모델론의 가능성을 보일 수도 있다. 한계가 있지만 기층 마을에서 선거가 이뤄지고 있고, 의회대표 선출에서도 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정치지도자 선출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정치의 예측가능성은 높아졌다. 또한 중국 역사 속에서 민원을 해결하던 신방(信訪) 제도를 발견하는 등 중국식 민주의 뿌리를 찾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주석 선출제나 공산당과 함께 입법부를 구성하는 삼원제(tricameral)도 난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공의 역설’이라는 그림자가 남아 있다. 중국의 부상도 수축과 적응 과정의 결과였듯 ‘중국식 민주’를 통해 이 고비를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중국붕괴론에 매달려 있을 것이 아니라 중국과 경험의 교류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멀리 가기 위해 함께 가야 한다는 공진(co-evolution)의 논리다. 이번 회의에서 중국 학자들이 한국 민주화의 성취를 듣고 싶어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정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