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석 (3) ‘작은 슈바이처’ 꿈꾸며 전남대 의대에 입학
입력 2011-09-06 18:06
1957년 전남대 의과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예과에서 본과로 진학할 때 학점 부족으로 낙제하는 예가 많았다. 그때 본과생 칼라에 달린 십자가 모양의 ‘醫’(의)자를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예과 철학시간. 정종 교수님은 ‘인간의 존재감이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간존재란 피투적 투기(被投的 投機)다.” 즉 ‘인간이란 던져지면서 던지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유명한 등산가 말로리에 관한 이야기도 하셨다. 말로리는 등산하다 조난으로 죽기 전에 친구들이 “너는 왜 그 힘겨운 등산을 계속하느냐?”고 물으니까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Because it is there)”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참으로 등산가다운 답변이었다.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 인생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앞에 도전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것이 그 시간 그곳에 있기 때문에 도전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설령 죽음이 우리 앞에 있다고 할지라도.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의과대학을 지망한 대부분 학생은 아프리카의 람바르네에서 흑인 등을 위해서 평생 의술을 펼쳤던 의학박사이자 신학박사, 파이프 오르가니스트였던 슈바이처 박사를 한번쯤은 머릿속에 떠올린다. 요즈음 매스컴에서 ‘의술이 상술로 변했다’면서 비판하는 말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숨어 있는 작은 슈바이처 박사들이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의학계의 많은 선배들이 언급한 말이지만 우리 인체는 소우주 같다. 참으로 우리 인체는 신묘막측하다.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이라도 해도 가히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최근 제럴드 슈뢰더 박사가 쓴 ‘신의 숨겨진 얼굴(The Hidden face of God)’이란 책을 읽었다. 그는 유대인으로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히브리대학에서 연구를 계속하신 분이다. 그는 모든 물질의 근본 요소를 이루는 아원자(亞原子)가 입자이자 파동인 동시에 그 근원이 정보 또는 지혜인 것처럼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도 지혜의 표현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의 본질이 지혜-단일체로 귀결된다는 그의 이야기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로마서 1:20)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물리적 실체라기보다는 지혜의 현현(懸懸)임을 강조하면서 유물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우주와 만물이 하나 되게 하는 단일체의 지혜를 독자들이 경험하기를 권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자신의 영적 뿌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의 삶을 성실히 영위할 때 발견되는 것이지, 수도사의 삶을 살아야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 삶 가운데 존재의 경이로움을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 의도한 바여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나는 평소 인간의 질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분비질환, 또 그중에서도 갑상선질환을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내분비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호르몬 측정이 우선되어야 했다. 프랑스 파리의 피티에-살페트리에대 의과대 유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