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화가들 전시회 담장을 넘다… 이웃과 아름다운 동행 ‘아트미션’ 회원들

입력 2011-08-31 19:34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13년 전 IMF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깃발을 들었다. 미술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친목회나 동아리 등 기존의 잘 나가던 단체도 깨질 판이었다. 새로운 모임을 꿈꾸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었다. 몇 개월 동안 햇빛도 마다하고 지하 작업실에서 생활하며 작업을 하는 이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는 발상은 더욱 그랬다. 다들 ‘꿈 깨’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들은 웃었다. 손에 꼽을 정도였던 회원은 현재 60여명으로 늘었다. 그중에는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작품이 팔리는 인기 작가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화력(畵力)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여기고 낮은 곳을 향해 이젤을 세우는 소박한 작가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지만 연회비 20만원씩을 기부해가면서 형편이 좋지 않은 이웃을 돌보는 아름다운 동행에 나서고 있다.

아트미션 탄생의 비밀

서성록(안동대) 교수와 김섭 김미경 이지은 하명복 윤미란 등 몇몇 크리스천 작가들이 둘러앉았다.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심정이었다. 복음을 전하자는 취지는 좋았지만 장담할 순 없었다. 가뜩이나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마당에 나눔 운동이라니 생뚱맞기도 했다.

기독교 예술의 발현을 꾀하고 아름답고 영화로운 예술을 창조해 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일명 복전사)은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드러내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믿지 않는 이들에겐 되레 역효과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결국 창립 4년 만에 ‘선교 냄새가 덜 나는’ 이름으로 바꿨다. 한눈에 정체성을 보여 주면서 현대적인 감각에 맞는 이름으로 ‘아트미션(ART MISSION)’이 좋다는 제안이 나왔다. 반응은 모두가 ‘아멘’이었다.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해였다. 모두가 광장으로 나와 한목소리를 냈다. 아트미션 회원들도 저마다 ‘붉은 십자가’를 자청하며 길거리로 나가 시각문화 선교 활동에 나섰다. 신앙의 토대 위에 포럼을 개최하고 예술의 이론적 연구와 출판 등의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현대 미술을 통해 사람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크리스천 화가 그룹이라는 칭찬도 따라붙었다.

모임이 잦아질수록 각자 뚜렷한 자기 색깔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매월 정기모임을 갖는다.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국제제자훈련원에서 매월 셋째 주 금요일 6시에 만난다. 이 모임은 아트미션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예배와 기도, 현대 미술이론서의 연구와 작가론 발표 및 토의 등으로 예술의 영역을 풍성하게 다지고 각자의 작업에 자양분을 얻는다. 연 1회 포럼도 진행한다. 멤버들은 각각의 교회 안에서는 목사와 장로, 권사, 집사, 선교사로 섬기지만 아트모임 안에서는 화가와 조각가 등 예술가와 미술이론가로 창작활동을 편다.

거리의 악사(樂士)가 된 화가들

마침내 2004년엔 전시회 담장을 넘었다. 작품을 들고 시민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길목을 찾아 나섰다. 회원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정기적으로 갤러리로 들고 나와 개인전을 여는 등 적극적인 소통작전을 폈다. 일반 대중을 찾아가 작품 감상 토대를 만들어갔다.

음악과 그림이 있는 즐거운 공간. 서울 지하철 을지로4가역에서 퇴근길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희락(喜樂)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웃과 직접 소통하는 길이 아주 쉽게 뚫렸다. 작가 중 기타를 잘 치는 이가 앞장섰다. 함께 노래하며 소품과 아트 상품, 학용품 등을 팔았다.



작업실과 전시실을 벗어난 화가들은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번 돈은 곧바로 불우한 이웃의 생계비 지원으로 흘러들어 갔다. 해마다 열리는 자선 전시회의

수입금은 외국인 근로자와 소년 소녀가정을 돕는 데 썼다.

지난 7월 6일에는 회원 45명이 참여한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라는 정기전을 열었다.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 미술의 건조함을 지적하는 전시회였다. 이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이 확정되던 날. 평창 동계올림픽의 슬로건도 ‘새로운 지평’이었다.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NEW HORIZONS)

올해로 10회째인 아트포럼은 지난 27일 서울 일원동 밀알미술관 일가홀에서 열렸다. 주제는 역시 정기전의 슬로건과 같은 새로운 지평이었다. ‘기독교 세계관과 예술’이라는 부제로 5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예년에 비해 배가 넘는 150여명이 참석했다. 황금 같은 토요일, 불편한 의자였지만 대부분 마지막 토론회까지 참여하는 열정을 보였다. 포럼에 앞서 두 명의 탈북자 청소년에게 월 15만원씩 지급하는 통일장학금 전달식도 가졌다.

이날 서성록 교수 등 5명의 발제자는 현대 미술의 허와 실을 꿰뚫었다. 서 교수는 현대 미술의 위기는 신앙의 위기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으로 시선을 모았다. 그는 ‘현대 예술은 막다른 벽에 부딪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 예로 해부용 시체를 찍은 ‘수 폭스(Sue Fox)’의 사진이나 아동살인죄로 무기징역에 처해진 마리아 힌들리의 대형 초상화를 전시한 ‘마커스 하비(Marcus Harvey)’, 포르노잡지에서 잘라낸 나체사진을 콜라주해 논란을 빚은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성모 마리아’ 등을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도발적인 작품에 대해 “현대 미술은 죽음과 고통은 있으나 그에 대한 아무런 연민도 없고 기초적인 이해도 없다”고 지적하며 “근래에는 죽음 자체를 즐기는 ‘가학적 쾌락’이 판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한국교회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교회가 예술에 등을 돌리는 순간 ‘방종의 문화’가 판을 칩니다. 기독교가 예술에서 발을 빼자마자 예술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 내에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서 교수는 N. 월터 스토프의 ‘책임 있는 대리인’ 개념을 언급하면서 “진정한 (신앙) 자유인이라면 세상에 사랑을 공급하고 평화를 주며 소망 있는 삶을 보여 주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지적은 현대 미술에 무관심한 크리스천에게 경종이 됐다. 서 교수는 “기독교의 자유란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버리고 방탕생활에 뛰어드는 것과 다르다”면서 “이 같은 자유가 모든 절제와 질서와 분별을 폐기한다고 여기는 생각과도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의 뉴호라이즌’은 새로운 사조나 모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주체인 인간성 회복에 있다고 역설했다.

내년까지 모임을 이끄는 김덕기 회장은 “올 연말에는 경복궁 옆 팔레드 서울 전관 갤러리에서 탈북민 자립을 돕는 대대적인 자선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면서 “지금 아트미션 멤버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한다는 마음에 무더운 여름에도 창작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자선 전시회는 ‘2011 함께하는 세상전’이라는 타이틀로 2주간 열린다. 아트 상품과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소품과 대작들도 감상할 수 있게 기획하고 있다. 참여 작가는 50명 내외가 될 것 같다.

글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