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천안함재단 조용근 이사장 “北, 우리 시험하려 또 포격… 느슨해진 안보의식 다잡아야”

입력 2011-08-22 21:41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정과 평화는 이를 지키려는 준비가 없다면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천안함재단 조용근(65) 이사장은 지난 10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격은 언제든 북한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과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이사장은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의 악몽이 되살아났다”며 “느슨해진 안보의식을 다시 한번 다잡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국민들은 과거의 교훈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며 “우리 영토를 유린하려는 적의 의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데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22일 조 이사장이 운영하는 서울 서초동 세무법인 ‘석성’ 회장실을 찾아 천안함재단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천안함재단은 천안함 피격사건 희생자들을 위해 지난해 12월 국민들이 모은 성금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최근 북한의 연평도 NLL 포격사건에 대해 우려가 많다고 들었다.

“북한은 항상 우리의 허점을 노린다. 우리 군도 평소 대비를 잘해야 하지만 국민들 역시 강한 안보의식을 가져야 한다. 북한의 예기치 않은 공격으로 46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어야 했던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 지 겨우 1년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북한은 다시 한번 우리의 대비 태세를 시험했다. 국가안보는 산소와 같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지만 숨쉬기가 곤란해지면 곧바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의 안보의식 고취에 더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함재단이 출범한 지 8개월이 지났다. 그간 어떤 활동을 해 왔나.

“재단의 출범 목적은 4가지다. 첫 번째는 천안함 순국 46용사와 고 한주호 준위 등 사망자 유족에 대한 복지대책이다. 두 번째는 생존 장병에 대한 정착 프로그램이다. 생존 장병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세 번째는 해군과 해병대의 복지 증진과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이고, 마지막으로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다.

유족들에 대한 복지대책으로 국민성금 가운데 유족들에게 5억원씩 지급하는 등 250억원을 사용했다. 지난 1월 21일에는 생존 장병들을 초청해 1인당 500만원씩 격려금을 전달했다. 3월에는 천안함 1주년 행사를 가졌고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백령도와 천안함이 안치된 평택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하는 안보현장 방문 프로그램도 실시했다.”

-생존 장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들었다.

“살아남은 장병들은 58명이다. 이들은 천안함 피격사건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충격과 공포로 밤마다 악몽을 꾸고 잠 못 이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신은총 하사 같은 경우는 너무 안타깝다. 신 하사는 자기 때문에 동료가 죽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고 당일 함께 근무를 서던 동료를 조금 쉬라며 내무실로 보낸 게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자책하고 있다. 따뜻한 배려가 도리어 죽음으로 돌아온 것에 그는 더 충격을 받은 것이다. 신 하사 같은 생존 장병들이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 책임이다.”

조 이사장은 생존 장병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전해지는 듯 인터뷰 도중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근무했던 수병 15명 가운데 11명이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지만 대부분 아직도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다. 조 이사장은 이들을 수시로 만나 이야기도 들어주고 격려도 한다.

-생존 장병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우선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한다. 이들은 죄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죄인처럼 살아간다. 주변에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시급하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우선 이들을 도와줄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재단이사 6명이 일단 먼저 멘토로 나섰다. 앞으로는 해군에서 좋은 선배들을 찾아 연결해줄 예정이다.”

-해군과 해병대의 병영문화 개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군과 해병대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우리 장병들이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첨단무기체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제 운용하는 장병들의 근무 여건 역시 가벼이 여길 사항이 아니다. 최근 해병대 총격사건에서 보듯 전근대적인 병영문화로는 건강한 군을 길러낼 수 없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장병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고 관심병사 등 전문적인 상담을 필요로 하는 장병들을 지원하는 일도 가능할 것 같다. 병영문화 개선은 군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 사회가 일정부분 분담해서 지원해야 한다.”

-38년간 세무공무원으로 일해 왔는데 어떻게 천안함재단 이사장을 맡게 됐나.

“지난해 5월 KBS 주관으로 천안함 피격사건 희생자를 돕기 위한 국민성금을 모금할 때 한국세무사회장으로 회원들이 모금한 2300만원을 기탁했다. KBS 측이 성금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각계각층 전문가들을 선정해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한 분이 제가 국세청에서 오래 일해 법규도 잘 알고 회계관리도 잘할 수 있는 적임자라며 추천했다.”

-천안함재단을 이끌어 가는 원칙 같은 게 있는가.

“이사장 임기는 3년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신성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천안함 희생자들이 아픔을 딛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안보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보람을 선물하고 싶다.

천안함재단은 국민성금 395억5400만원 가운데 유족들을 위해 쓴 지원금을 제외한 145억5400만원으로 시작됐다. 코흘리개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십시일반으로 모은 귀중한 성금으로 이뤄진 재단이다. 한 푼이라도 헛되이 쓰여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