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정권 붕괴] 반군 구심점 없어 ‘권력 공백→분열 재연’ 가능성
입력 2011-08-22 21:47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퇴진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차기 리비아 지도자가 누가 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기 지도자가 리비아의 불안을 빠른 시일 내 안정시키지 못하면 리비아는 제2의 이라크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세계 각국의 이권 다툼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카다피는 누구=가장 유력한 후보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반군 과도국가위원회(NTC) 위원장이다. 카다피 정권에서 2007년부터 법무장관을 지낸 그는 지난 2월 카다피가 시위대에 실탄 사격을 지시하자 이에 반대해 정부 관료로는 처음 반군에 합류했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미국 외교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잘릴 위원장을 “공정한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카다피 이후에도 NTC가 존속하겠지만 8개월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헌법에 따라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흐무드 지브릴 NTC 총리도 후보선상에 올라 있다. 그는 NTC 총리이자 특사로 외국 인사들과 수차례 접촉해 왔다.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 교수 출신이자 반군의 경제, 재무, 석유 분야를 담당하는 알리 타로니 NTC 재무장관도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NTC 국방장관인 오마르 할하리리도 반군의 선전에 힘입어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한때 카다피 정권에 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반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반군 최고사령관 압둘 파타 유네스가 반군 내부 세력에 의해 암살된 사건에서 보듯 반군 세력은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2의 이라크 될 수도=카다피의 독재가 42년간 계속되면서 반대파들은 힘을 키우지 못했다. 때문에 카다피가 물러나면 한동안 국가 지도층의 공백기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컨설팅 회사 메이플크로프트 소속 중동 문제 전문가 앤서니 스키너는 “이들이 국가를 경영할 내각을 구성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140여개 부족 간 정치적·경제적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리비아 정국은 새로운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영국 주재 리비아 대사를 지낸 올리버 마일스는 로이터 통신에 “반군은 리비아가 또 다른 이라크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군 측이 카다피가 물러난 이후 정국을 수습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엔이 한동안 리비아 통치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포스트 리비아 쟁탈전=이른바 ‘포스트 리비아’에서 누가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할지를 두고 강대국끼리 힘겨루기가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대국들은 정치적 영향력 행사보다 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목소리를 낼 나라는 리비아 공습 작전에 앞장선 프랑스와 영국이다. 특히 프랑스가 전공(戰功)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3월 작전 개시를 선언하는 등 공습에 적극적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프랑스 정부는 잘릴 NTC 위원장을 파리로 초청, 선점효과를 노리고 있다. 미국은 직접적 공습 작전과 거리를 뒀지만 무인 공격기 등 공습 물자를 대거 제공했으므로 영향력 행사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강대국들은 그러나 정치·군사적 개입은 최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에겐 이라크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다국적군은 전쟁으로 이라크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얻었지만 실익은 없었다.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다툼은 석유사업과 재건사업 등 경제 분야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서 중국의 행보가 주목된다. 중국은 그동안 리비아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고 중국 매체들이 22일 보도했다. 반정부 세력에 인도주의 명분으로 쌀과 의약품 등을 보냈고, 중국 기업이 재건사업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까지 독재정권이 무너졌으므로 북아프리카 정치지형도 크게 변화할 전망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나라에까지 민주화 열기가 확산될 수 있다. 유혈 사태를 겪고 있는 시리아와 예멘의 반정부 시위도 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슬람 강경 세력이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득세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김준엽 권기석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