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보장 돼야” VS “정체성 훼손 안돼”… 신학교 교수의 길은?

입력 2011-08-22 18:08


‘정치권력 같은 외부세력으로부터의 자율, 그리고 학문의 자유는 대학의 자의식, 즉 자기 정체성이다. 진리 탐구와 사회 변혁의 힘은 이런 토양에서 나왔다.’(이석우 ‘대학의 역사’ 중)

그렇다면 신학교(신학대)의 정체성은 뭘까. 최근 고신대 신대원 양낙흥 교수에 대해 교단이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양 교수의 저서가 교단 설립자를 비판·왜곡함으로써 교단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게 이유다. 자율과 자유라는 대학의 보편성, 교단 정체성 강화라는 특수성 사이에 놓인 신학교 교수들의 고민, 그리고 해법을 짚어봤다.

◇학문의 자유 vs 교단 정체성 강화=“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100% 잘못됐거나 100% 잘했다는 평가는 있을 수 없다.” 서울신대 정인교(설교학) 교수의 말이다. 신학교 교수들의 연구·강의의 자유가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이유다.

고신대 A교수도 “어떤 인물이든 심지어 교단도 약점과 강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마치 다 잘한 것처럼 교수들이 발표하고 강의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학교 교수가 속한 교단에 대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자세를 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신학교 교수들의 학문의 자유가 때로는 교단과의 긴장관계를 불가피하게 불러올 수도 있다는 두 교수의 견해와 달리 장신대 소기천(신약학) 교수는 학문의 자유와 교단 정체성은 다르지 않다고 봤다. 소 교수는 “신학교 교수들은 당연히 학문을 우선시한다”며 “그렇다고 그것이 교단 입장과 충돌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신학교 교수의 학문의 자유는 결국 교단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천신학대학원대 정재영(종교사회학) 교수는 ‘교단 정체성’을 짚었다. 양 교수의 경우에서 보듯이 신학교와 교단 간 대립은 주로 교단 정체성을 명분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교단 정체성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닌 만큼 교단 정체성을 논의하고 재수립하는 과정에서 교단 중심부만 아니라 직위나 학식에 상관없이 교단 내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이 수렴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수의 역할 & 교단의 역할=학문의 자유, 교단 정체성 강화의 두 줄 타기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신학교 교수의 처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신대 A교수는 “신학교 교수는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교단을 비판하기에 앞서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풍토에서 교단 비판은 결국 교수와 교단의 관계를 어렵게 하고, 결국엔 학문의 성과마저 뒷전으로 만든다. 이럴 때는 학문의 성과를 앞세우기보다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비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인교 교수는 “교단 신학교 교수는 교단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학생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교단 헌법이 이미 규정해 놓은 것을 교수 개인의 의견으로 학생들 앞에 강의하는 것은 분별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굉장한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재영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고, 연구과정에서의 오류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견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는 학문적 태도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학문의 자유와 교회 정체성 강화를 위한 교단의 역할은 뭘까. 정인교 교수는 “교수가 어떤 의도를 갖고 발표하는 게 아니고, 그것이 교단 신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게 아니라면 학자로서의 전문성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했다. 다른 교수들도 이 같은 의견에 대체로 공감했다.

소 교수는 교수와 교단 간 조정과 조율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쪽이 대화를 차단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지성인 사회에서나 통합과 화해를 추구해야 할 교회 입장에서도 맞지 않다”며 “교단 대표와 해당 학자가 현안을 놓고 대화를 나눌 때 서로 화해하고 타협점을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