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가을의 소리

입력 2011-08-21 17:52


모기도 입이 비뚤어지고 들판의 잡초도 생장을 멈춘다는 처서가 다가오니 몸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이 다르다. 며칠 새 새벽녘에는 한기가 느껴져 따뜻한 이불을 챙기게 된다. 여름답지 않은 날씨마저 혹시 세상풍조 따라가는 것 아닌가 걱정될 만큼 끝날 것 같지 않게 억수같이 쏟아진 폭우와 태풍으로 땅의 열매들이 채 익지도 못하고 망가져 농부 가슴 태우고 아까운 생명 거둬 여러 사람 마음을 할퀴어 놓고는 금년 여름도 무심하게 간다.

바람이 불거나 비 내리는 밤이나 조용할까…. 열대야에 귓가에서 울부짖던 매미의 표독한 날갯짓으로 잠 못 이루고 몸을 뒤척이게 하던 매미의 울음도 얼마 남지 않은 생애의 종착점을 아는 듯하다. 천신만고 끝에 세상에 태어나 1∼2주의 짧은 생을 목이 터져라 울다 마친다는 기구한 매미의 일생은 안쓰럽지만 그닥 반갑지 않은 여름 손님이다.

매미가 퇴장하면 귀뚜라미의 세가 커질 것이다. 자연의 순리는 변하는 법이 없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순행은 하늘의 이치인지라 한 치의 어김도 없으니 여기저기서 가을의 색깔이 감지된다. 가을의 전령사라는 고추잠자리도 일찍부터 하늘을 날았고 여름 뙤약볕에 코스모스도 피었다. 하지만 동화처럼 하얀 뭉게구름 핀 파란 가을하늘 아래 은빛 날개 파닥이며 여유롭게 하늘 높이 나는 고추잠자리의 날갯짓과 들녘에 여러 빛깔로 채색된 코스모스가 그리 세지 않은 하늬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모습이 가을에 어울리는 그림일 것이다.

가을에는 많은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소리, 갈대소리…. 가을바람에 몸을 맡기고 차분한 마음으로 눈을 감으면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인다. 그 바람이 안으로 들어와 따스한 기억으로 옛 마음을 들춰낸다. 갈대소리가 그리우면 천국을 오르는 계단인 냥 수많은 계단을 올라 하늘 가까이 닿은 하늘공원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듣는 갈대소리 또한 자연의 선물이다. 눈앞에 펼쳐진 갈대밭의 아름다움과 스으윽 사아악 울어대는 갈대바람 소리에 취해 있다 보면 어느덧 나도 한 자락의 갈대가 된다.

여름내 세운 약속을 다 지키지 못했지만, 계절을 겪는 것은 나이를 먹는 일이지만, 난 가을을 기다린다. 브라운색과 커피가 잘 어울리는 가을이 좋고 가을이 주는 소리가 좋다. 문만 열고 나가면 사방에서 소리가 들린다.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덕에 채색옷을 갈아입은 나무와 계곡의 맑은 물소리는 온 몸이 그대로 자연 속에 녹아들게 한다. 가을의 빛과 소리는 결코 번잡하지 않으며 친근하니 그 안에 잠시 쉬어갈 수 있음이 행복이다.

밖의 온도는 낮아지지만 안으로 따뜻함을 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깊은 속정을 나눌 좋은 절기가 사그락 사그락 오고 있다. 자연만물은 오직 우주의 질서대로 순응하며 살아간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나무처럼, 계곡의 물처럼….

김세원 방송작가